[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대종경〉 부촉품7장에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28(1943)년 1월에 '교리도'를 발표하면서 "내 교법의 진수(眞髓)가 모두 여기에 들어 있건마는 나의 참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꼬. 지금 대중 가운데 이 뜻을 온전히 받아갈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한 듯하니 그 원인은, 첫째는 그 정신이 재(財)와 색(色)으로 흐르고, 둘째는 명예와 허식으로 흘러서 일심 집중이 못 되는 연고라, 그대들이 그럴진대 차라리 이것을 놓고 저것을 구하든지, 저것을 놓고 이것을 구하든지 하여, 좌우간 큰 결정을 세워서 외길로 나아가야 성공이 있으리라"고 했다.

원불교에 종사하는 사람의 공동된 목표는 무엇일까?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가지며 권력을 잡아 세력을 부리는 것일까? 아마 이러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오직 도인(道人)이 되는 길이 제일이다. 도가 행해지는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원불교의 바람이다. 즉 안으로는 성품을 회복하여 마음 쓰기를 잘 하고 밖으로는 일원의 진리를 깨쳐 파란고해에서 생령을 구제하여 낙원을 세우는 일, 곧 성사(聖事)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 교리도는 원불교 교리의 핵심을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했다. '교리도'는 원기17(1932)년 발행한 〈보경육대요령(寶經六大要領)〉에 처음 등장했으며, 원기28(1943)년의 〈불교정전(佛敎正典)〉을 거치면서 보강되며, 원기47(1962)년의 〈원불교교전〉에 이르러 완성을 보았다.  어느 날 글을 하나 지었다.

大凡敎理圖는 恰似龜形之樣으로 長壽之物이니 實爲敎團의 累萬歲之象徵也라 故로 此爲中心於一圓之相하야 左開於因果報應之信仰門하고 其下懸於四恩四要하며 又懸於處處佛像事事佛供也라 右開於眞空妙有之修行門하고 其下懸於三學八條하며 又懸於無時禪無處禪也라 又中置於一圓之內譯하며 其下置於偈頌온 終敎理圖之完成하니 乃是爲宇宙眞理之圖板이요 亦爲三世諸佛之圖出이며 亦爲衆生救濟之圖經이요 亦爲建設樂園之圖本也라  

무릇 교리도는 흡사 거북이 형상 모양으로 장수하는 동물이니 실로 교단의 누만세를 상징한 것이라. 그러므로 이 일원의 상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는 '인과보응의 신앙문'을 열었고 그 아래 '사은사요'를 달았으며 또한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달음이라. 오른쪽에는 '진공묘유의 수행문'을 열었고 그 아래는 '삼학팔조'를 달았으며 또한 '무시선 무처선'을 달음이라. 또한 가운데는 일원의 내역을 두었으며 그 아래 '게송'을 두어서 이에 '교리도'의 완성을 마쳤으니 이것은 우주 진리의 도판이 되는 것이요, 또한 삼세 모든 부처의 도출이 되는 것이며, 또한 중생을 구제하는 도경이 되는 것이요, 또한 낙원을 건설하는 도본이 되는 것이라.

송(頌)하기를
一眼丕開見(일안비개견)  한 눈 크게 열어서 보니
四隅實道場(사우실도량)  동서남북이 실상의 도량이요
敎圖天理韞(교도천리온)  교리도에 천리가 갈무렸으니
成地樂園房(성지낙원방)  땅위에 낙원의 방이 이뤄지리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19년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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