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수영 교도] 지난달 학회 참석차 지방에 다녀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주차를 하고보니 바로 옆에 커다란 일원상이 보였다. 시장 입구에 번듯하게 자리 잡은 교당은 신축한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이었다. 혹시 문이 열려있으면 불전헌배나 하려고 입구까지 가 보았지만 교당문은 닫혀있고 기척이 없었다. 그냥 돌아 나오는데 뭔가 아쉽고 개운하지가 않았다. 

가끔 해외여행을 가면 곳곳에 있는 성당을 방문할 기회가 많다.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대형 성당부터 시골 동네의 아주 작은 성당까지, 어디나 스스럼없이 들러서 동전 한 닢이라도 놓고 기도를 올리곤 한다. 지방 여행 중에 들르게 되는 절에서도 가능하면 참배를 빠트리지 않는다. 

종교생활을 하면서 타종교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라도 들러서 참배할 수 있도록 공간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은, 방문하는 누구라도 포용한다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원불교의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단적인 비교가 되겠지만 다른 종교의 건물과 원불교의 건물을 비교해보면, 타종교의 건물은 그 종교의 신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수요자 중심의 공간구조이고, 원불교의 건물은 내부 교도와 운영자 중심의 구조라고 보여 진다. 기도나 참배를 위한 타종교의 공간은 진입 문턱이 낮지만, 대개의 각 교당 대각전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쪽으로는 출입구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때로는 안내 팻말이 필요할 정도의 구조로 된 곳도 있다. 
 

교당을 상시 개방하지 못하는 현실 아쉬워
도로 접한 1층에 대각전 출입문 있었으면

언젠가 TV에서 어떤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1등을 하게 된 배경을 묻자 그 수상자는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매일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가족이 "그런데, 할머니는 절에 다녀요!" 하는 것이었다. 인터뷰어가 왜 그랬냐고 묻자 그 할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성당은 멀리 있고, 절은 집 앞이니까…. 바쁘니까 멀리 못가고 가까운 데서 했지. 다 똑같은 거야." 

원불교는 언제쯤 이 할머니처럼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망설임 없이 찾아와서 기도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지, 생각해보면 참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교단 초창기의 대각전 건물들을 보면, 모두 개방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 
원불교가 도시로 진출하면서 법회를 볼 수 있는 공간 마련에 우선 목표를 두다 보니, 오늘과 같은 현실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전국에, 아니 전 세계에 교당 없는 곳이 없다고 한들, 타 지역교도가 여행 중에 들러 참배할 수 있는 교당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몇 해 전 해외에서 입교한 어느 교도의 경우도 원불교의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우연히 해외 현지에서 원불교를 알게돼 입교하고, 발심이 나서 국내에 일이 있어서 들어올 때마다 교당을 찾는다고 하였다. 마침 한가한 날이 있어서 평일 어느 날 집에서 가까운 교당을 찾았더니, 교무가 문도 안 열어주고 인터폰 너머로 법회가 있는 일요일에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런 상황이 이해가 안돼 현지에 돌아가서 교무님께 이야기 하니, 교도를 사칭한 장사꾼들이 너무 많아서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교화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때로는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공존을 말하면서 여성 교무 혼자라는 이유로 일요일 오전에만 반짝 교당을 개방하는 현실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주 법회 때 지방의 한 교당 대표 몇 분이 교당견학을 왔었다. 함께 법회를 보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인연 있는 분의 안내로 교당 곳곳을 돌아보며 오후까지 카페에서 차담이 이어졌다. 

어느 곳이든 문턱이 낮을수록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일단 사람이 많이 모여들어야 그 다음에 교화든 뭐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대종사님과 법신불사은님께 올리는 향화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날,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염원해본다.

/강남교당

[2019년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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