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태우 교도] 세계평화의 날은 전쟁과 폭력의 중단을 목적으로 1981년 제36차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결의를 통해 제정됐으며, 2001년 제55차 유엔 총회에서 평화의 가치와 소중함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평화의 날을 9월21일로 확정됐다. 한국의 경우, 2008년 수잔 마누엘(Susan Manuel) 유엔 공보국장의 요청에 따라 한국조직위원회를 설립했으며 매년 유엔기구 및 평화NGO들과 함께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조직위원회는 외교부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매년 60여 개의 평화단체가 참여하는 국내에서 상당한 규모의 평화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성장했으나,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한 민간단체 보조금 전수조사 이후 국고보조금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해체 위기를 맞이했었다. 지난 수년 동안 정치적 편향 없이 평화시민운동을 전개해 왔었기에 진보와 보수 정권의 집권여부와 관계없이 정부의 긍정적 평가 아래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왔던 사업이라 그 당시에는 매우 당혹스러웠었다.

국고지원금이 중단된 이후, 한국조직위원회의 위상과 영향력도 자연스레 약화됐다. 그래서 2016년, 2017년에는 단체의 명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념행사만을 개최하면서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평화시민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을 했었다. 약 2년이란 기간 동안에는 정말 다양한 실험들을 시도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한국조직위원회는 2018년부터 기존의 네트워크 플랫폼 체제를 뛰어넘어 보다 실천적인 평화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한국조직위원회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넓혀 나가기 위해 유엔NGO 및 국제NGO들과의 협력을 강화했으며 한국과 세계와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유엔본부 세계평화의날 NGO위원회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또한 세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일본 나고야대학과 미얀마 양곤대학 등 국가별 주요 대학들과 함께 문명 간의 대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조직위원회의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한국조직위원회의 평화활동 사례가 새로운 평화시민운동의 모델로 그 가능성을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조직위원회 사무국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사무국을 구성하고 있으며, 구성원의 다수는 20·30대 직장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생들의 경우 꾸준하게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 몇몇 학생들은 취업 이후에도 평화활동가로서 계속 함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현재 사무국은 20명의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조직위원회의 평화활동이 새로운 평화시민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사무국 구성원들이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무국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티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모이는 커뮤니티 활동이 아닌 실제적인 평화NGO의 역할을 수행하는 커뮤니티로서 '일'과 '취미'가 점차 동일시되어가고 있다. 구성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화활동에 참여하는 자체가 그들의 일상생활에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한국조직위원회에 소속되어 함께 하는 평화활동가들이 처음부터 평화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며, 그들은 평화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관심을 보다 깊게 가지게 되고, 또 공부를 통해 실천을 함으로써 점점 평화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평화의 시대화·생활화·보편화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조직위원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추진했던 한 가지 실험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정산종사의 "복중에는 인연복이 제일이요, 인연복은 인화에서 오고, 인화는 심화에서 오나니라"라는 말씀을 현실에 진지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작년 하반기부터 하나둘씩 평화운동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평화활동가로서의 삶이 생활화 되어 한국조직위원회의 사례와 같이 시민이 주도하는 평화운동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연합운동 또한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강교당·원광대 국제교류과 초빙교수

[2019년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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