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법인성사를 이룬 아홉 제자들에게 대종사가 이를 기념해 새 이름을 내린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석 달 열흘간 산상기도를 올리고 또 열흘간의 기도를 통해 결사의 다짐을 하게 한 것은, 그들에게 새롭게 태어난 공인(公人)으로서 사무여한의 공익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훗날 전무출신제도로 정립된다.

죽기를 각오하고 창생을 위한 세계 사업에 나선 아홉 사람이 다시 새롭게 살아났으니, 그들은 전날의 세속 사람이 아닌 공인으로서 세계가 다 함께 부를 공명(公名)을 가지게 됐다. 또 이는 법계가 인증한 이름이라 하며 법명(法名)이라 했다. 

천제의 대행자이며 장중의 한 구슬처럼 법계(法界)를 장악한 대종사가 친히 작명한 이 법명 속엔 필시 엄숙한 의미가 들어 있을 터이지만, 또한 기지와 해학이 곁들어 있음을, 후일 여러 제자에게 준 이름을 미루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법명은 대종사 자신의 휘(중빈 重彬)였다. 물론 기미년 법인성사를 통해 공식 천명됐지만, 제자들의 법명도 법인성사 훨씬 이전 원기원년의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김성구(金聖久)가 기천(幾千)이란 법명을 받은 데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대종사가 김성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네가 천장봉 아래 훈장 노릇을 해서 글이야 상당하겠으나, 천지이치를 깨치고 생사 해탈을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겨. 진리공부를 해야 되아." "야아." "자네 이름이 성인 성자 오랠 구자지?" "야아." "오랜 동안 성인이었다는 것인디, 대체 오래 됐으면 몇 천년이나 됐을꼬?" 몇기, 일천 천자 기천(幾千)이란 법명은 이런 연유에서 붙여졌다.

김성구는 7세부터 글방에 다녔는데 글공부에 무척 재미를 붙였었다고 한다. 여느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철따라 산이며 들로 놀러 다니는데, 성구는 통 어울려 다닐 줄을 몰랐다고 한다. 

[2019년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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