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일원은 우리 교단의 최고 종지(宗旨)이다. 불교의 법신불이나 여래자리나 실상자리가 이 자리이다. 유가의 무극이나 태극이 이 자리이고 선가의 자연이나 도도 이 자리이며, 기독교의 하느님도 이 자리이요 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님도 이 자리이다.

어쩌면 이러한 자리는 무형이나 무짐(無斟)으로 추상적(抽象的)이거나 상징적(象徵的)이거나 가상적(假象的)인 의미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어서 다가서기로 하면 어떤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종사는 분명히 일원상은 진리의 사진이라고 했다. 사진이란 실물이 없으면 나타날 수가 없다. 옛글에 "명경당대 호래호현 한래한현 홍종재거 대고대명 소고소명(明鏡當臺 胡來胡現 漢來漢現 洪鐘在虡 大叩大鳴 小叩小鳴)"이라 했다. 즉 '밝은 거울 경대에 당함에 호나라 사람이 오면 호인이 나타나고 한 나라 사람이 오면 한인이 나타나며, 큰 종이 틀에 있는데 크게 치면 크게 울리고 작게 치면 작게 울린다'고 했다. 자신이 예쁘면 거울도 예쁘게 비춰주고 미우면 밉게 돌려줄 수밖에 없으며, 종도 크게 치면 큰 소리를 내고 작게 두드리면 작은 소리를 토한다.

이와 같이 사진은 실물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일원상은 일원진체의 사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대가나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행주좌와 어묵동정지간에 즉관진체(卽觀眞體)하고 직견일원(直見一圓)을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쉬운 진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필자가 지은 글 몇 개를 소개하면  

夫一圓之大道는 實不在遠이거늘 愚癡之人이 不覓近而覓於遠하니 如此之人은 易生而復出이라도 絶不尋得矣라. 무릇 일원의 큰 도는 사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가까이 찾지 아니하고 멀리에서 찾나니 이와 같은 사람은 생을 바꾸어 다시 나올지라도 절대로 찾아서 얻지 못하리라.

假令我不見이라도 在理體分明之物이요 亦是我不覺이라도 存一圓實在之相也라. 가령 내가 보지 못할지라도 이체란 물건은 분명히 있는 것이요, 또한 내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일원이란 실재로 있는 모습이어라. 

大凡一圓이 果然何物이며 亦何處在오 乃知之者는 宇宙萬有가 無所非斯物이요 又無所不在이며 反不知者는 森羅萬象을 足踏非是物이요 又開眼難見也라. 무릇 일원이 과연 무슨 물건이며 또한 어느 곳에 있는가? 이에 아는 자는 우주의 만유가 이 물건 아닌 바가 없는 것이요, 또한 있지 아니한 바도 없는 것이며, 반면 알지 못하는 자는 삼라만상을 발로 밟고도 이 물건이 아니요, 또한 눈을 뜨고도 보기 어려우리라.

송(頌)하기를
實體乾坤出(실체건곤출)  실체가 하늘땅을 내고
一圓宇宙生(일원우주생)  일원이 우주를 나았어라
若觀存在物(약관존재물)  만일 존재하는 물건을 보려하면
鷄喔䎸初鶊(계악오초경)  닭 울매 첫 꾀꼬리 소릴 들으렴.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19년 7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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