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바루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나를 바루어야 하듯
교육을 바루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부터 바루어

정해주 교도

[원불교신문=정해주 교도] 나는 초여름의 푸르름보다 더 싱그럽고 풋풋한 청춘들이 모여 있는 원광여자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원광여자중학교는 원불교 교립학교인 원창학원에 속해있는 학교이다 보니 매일 아침 인성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자는 대종사의 정신을 체 받아 아이들에게 바른성장 노트인 귀공주를 만들어 '나의 마음 바라보기', '감사와 충·효심 기르기', '큰 꿈, 강한 의지 같기' 등과 같은 여러 세목을 함께 체크하는 유무념 대조를 하고 있다.

비록 행정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는 일은 적지만 내가 먼저 실천하고 변화하여 그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대도 사업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보지 않더라도 일기를 쓰고 유무념 대조를 꼬박꼬박 해나가고 있다. 꼭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어떤 말을 쓰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 모든 것들이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 하나까지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성장한다.

가끔 깜짝 놀랄 만큼 나의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행동을 바루곤 했던 경험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미 교육의 대계에 함께 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위치에 있다면 꼭 교무, 교사나 직원이라는 이름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먼저 나의 삶을 바루어 저 미래의 꿈나무들이 보고 자란다면 그것이 곧 교화이고 교육이지 않은가.

대종사는 저 산속의 금을 캐어다가 빛나게 사용하면 사람들이 와서 금의 내역을 물으며 자연히 금을 캐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대도 사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학교에서 법당 교무님과 아침기도를 한다. 새벽 기도와 저녁 기도를 참석하고 있기에 학교 교무에게 '하루에 3번이나 기도를 하시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모습에서 보고 배워온 것이다. 나는 원불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크고 자라 늘 교당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새벽이면 단정한 기도복을 차려입고 교당에서 새벽기도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원불교인이라면 당연히 기도하는 것으로 알며 자라게 됐다.

어머니의 기억 때문일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나이가 되고 정토가 되어 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할까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기도가 떠오른다. 학교의 교직원들과 아이들을 위해 두 손과 마음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그러면 하루를 살아가며 만나는 인연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눌 때도 상생상화하고자 하는 기도의 심경이 절로 떠올라 인연복을 지어간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랜 세월 기도를 하며 얻은 자신만의 결론은 '기도에는 요행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서원을 세우고 좋은 의도로 기도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성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를 감사로 시작하고 열심히 실천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여 다시 또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가 되어야만 참다운 변화가 시작된다.

요즘 들어 학교에는 기도의 바람이 불어온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아침기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학교의 분위기가 한층 화기로워지는 것 같다. 이러한 느낌을 교단의 구성원들이 함께 느끼고 실천하여 참다운 기도의 위력을 얻어갔으면 한다. 정산종사는 조석으로 올리는 심고 한 번에도 나라나 세계가 큰 위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기도를 제언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그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헤아리며 오늘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함께하기를 염원해본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7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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