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구전심수(口傳心授)란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전심수의 정법 아래 사람 사람이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게 하도록,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을 내놓으셨고 이를 훈련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인 〈정전〉을 생활 속에서 응용한 후 지도인에게 일일이 문답할 때 법맥(法脈) 신맥(信脈) 법선(法線)을 올바로 연할 수 있습니다. 

▷공부인: 요즘 사춘기 아들 때문에 속이 터집니다. 제가 말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막 대들고요. 미운 마음이 일어나니 괴롭습니다. 화도 안 났으면 좋겠고, 아들이 밉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도인: 땅에 풀도 꽃도 자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공부인: 죽은 땅이겠죠. 
▶지도인: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심지(心地)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글자 그대로 마음을 땅에 비유한 거죠. 누군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화도 나지 않고,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공부인: 마음이 죽은 사람인가요?
▶지도인: 땅에 영양분이 많으면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처럼 마음이 건강하면 다양한 마음이 일어납니다(〈대산종사법어〉 제4 적공편 40장). 아무런 감정이나 느낌이 없다면 말씀하신 대로 마음이 죽은 사람이겠죠.

▷공부인: 하지만 경계 따라 있어진 마음 때문에 괴롭잖아요. 가능하다면 없애버리고 싶어요. 화가 나지 않는다면 아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지 않을 것 같아요.
▶지도인: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가 나서 괴롭다기보다는 화가 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아들이 대들면 화가 나는 것이 정상적인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몫은 경계를 따라 있어진 화나는 마음을 마음의 원리에 대조하며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원래는 화가 난다, 나지 않는다는 분별이 없건마는 아들이 내 말을 무시하고 대드는 경계를 따라 화가 난다는 분별이 있어졌구나'하고 마음을 바라보고 원래는 화가 난다, 나지 않는다하는 분별이 없는 원래 마음에 비춰보면 됩니다(진공으로 체를 삼고). 그러면 경계 따라 있어지는 마음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묘유로 용을 삼아). 그렇게 자신의 원래 마음과 묘한 상황을 본 후에 경우에 따라 화를 내야 하면 내고, 화를 내지 않아야 할 상황이면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인: 저도 알려주신 대로 해봤죠. 그런데 매번 아들을 볼 때마다 다시 요란해진단 말에요. 별 효과가 없어요. 저는 화가 안 났으면 좋겠는데 아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나니까 죽을 지경이에요. 마음 작용의 원리에 대조하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화가 덜 난다든지. 그런데 저는 매번 화가 납니다. 
▶지도인: 다시 말씀드리지만, 화가 나는 것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작용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일상수행의 요법에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고 하지 않으시고,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라고 하셨습니다. 

▷공부인: 똑같은 거 아닌가요?
▶지도인: '그 요란함'은 지금 일어난 요란함을 가리키는 겁니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요란함을 끌어오거나 미래에 일어날 요란함이 아니고요.

▷공부인: 지금, 여기에서 경계 따라 있어지는 그 요란함을 공부하자는 거군요.
▶지도인: '그'라는 단어를 영어로 표현하자면 'Here and Now'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공부'는 미래에 속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부입니다. 

▷공부인: 아들이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고, 제가 지난번에 화가 났는데 또 화가 난다고 괴로워할 것이 없다는 거군요. 그저 지금 화난 마음으로 공부만 하면 되는 거군요. 그저 그때마다 공부만 할 뿐이군요. 

/교화훈련부

[2019년 7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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