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현대사회를 사람들은 물신사회, 소비사회, 피로사회, 중독사회 등 다양하게 진단하며, 그러한 증상을 심각하게 알리고 있다. 지구의 문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도달할 지점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흡사 영화 '설국열차'와도 같다. 무한기관을 장착하고 언제 정차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달리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속도로 지구는 돌고 있지만, 지구의 문명은 인류가 분초 단위의 삶을 살도록 정교하게 설계되고 있다.

중독사회는 스포츠,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게임 등 인간이 다양한 형태의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城)〉에서처럼 주인공이 성의 주인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한계에 인류는 다다른 것이다.

물질의 발달이 인류를 행복의 낙원으로 이끌어줄 것 같은 신화를 만들어냈지만 반대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깨어난 사람들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붙잡고,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거나 그것에 의지하면서 스스로를 망각하고 싶어 한다.

이제 세계는 병들었다. 솔제니친이 〈암 병동〉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이 사회는 거대한 정신병원으로 이 병원과 작별을 해야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죽음에 이르러야 제 정신이 드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 세계는 하나의 꿈이기도 하다.  〈금강경〉에서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과 같으며,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고 한 것처럼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은 물질, 돈, 명예, 권력, 수명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꿈에 허우적거리다가 진정 잡아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그러한 모습을 정확히 꿰뚫어 본 분이 석존이며, 그 과정이 12인연의 연쇄반응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소태산 대종사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사자후로 인류의 정신을 바르게 세우고자 했다.

영화 '엑스 마키나'(원래 뜻은 '기계에서 나온 신')는 욕망의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AI) 로봇에 의해 역으로 고립되는 운명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자신을 파멸시킨다는 역설에 다름이 아니다. 현재 목격하는 수많은 사건들 대부분은 이러한 현상을 보여준다. 한 사회가 병들어 가는 모습, 즉 아만과 교만으로 무장한 삶,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중심인 삶, 공감과 이타와 자비가 없는 삶, 지도력에 상응한 능력과 권위를 갖추지 못하고 허위와 기만으로 둘러싸인 삶, 이는 우리 자신을 한없는 업의 순환에 빠지게 한다.

세계는 하나의 학교다. 우주 전체가 우리의 성장을 위한 학교다. 자신을 돌이켜보는 순간, 오히려 진급의 계기가 된다. 육근의 모든 움직임은 우리에게 법신불 사은의 절대적인 은혜를 자각하고, 어둠에서 밝음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잘못에서 바른 길로, 소아에서 대아로 확장시키는 순간이다. 강인한 진리적 삶으로 회귀하는 순간이다.

현생에서 나는 어디까지 진급했는가. 다음 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정전〉은 우리를 부처로 만드는 메뉴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병든 사회와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하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원광대학교

[2019년 7월19일자]

키워드

#원불교 #정전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