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결들은 인간의 무엇이 들어서 만든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움과 채움 그리고 도야는 깊은 수양을 통해 자신의 흰 마음을 키우고 검은 마음을 줄이는 것이며 행복한 인류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원불교신문=박세웅 교무] 요즘 들어 '인문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서점에는 인문학 도서들이 넘쳐 나고 있으며 방송에서조차 인문학특강과 인문학 관련 예능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떠한 가치가 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일까? 단순히 한자의 의미만을 살펴보면 인(人)은 사람, 문(文)은 글, 학(學)은 배움을 뜻한다. 하지만 인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문의 근원적인 의미는 바로 '결'에 있다. 나뭇결은 나무가 그동안 살아온 흔적을 말한다.

인문을 '사람의 결'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세대를 거쳐 살아온 삶의 흔적을 의미한다. 그 흔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언어·문학·예술·종교·철학·역사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결들은 인간의 무엇이 들어서 만들어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인간의 삶에서 자연현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위적인 것이며, 인위적인 것들은 모두 마음이 주체가 되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의 흔적은 모두 마음작용의 산물이다. 그런데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엇이라 설명하고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명심보감〉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불가지적 특징을 "범을 그리되 껍데기는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음의 특성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마음을 깨달아 알고 증명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결을 보고 나 자신과 우리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가장 잘 해왔고 실제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등을 우리는 '고전(古典)'이라고 부른다.

비움과 채움, 마음결 가꾸기
동서양에는 많은 고전이 있지만 필자는 중국철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유가의 고전들을 접하고 연구해 왔다. 현재 중국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동양고전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인 목적아래 자행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동양고전에 담겨진 성인들의 마음결을 따라 가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마음결을 가꾸어 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마음결을 가꾸는 길은 마음의 원리를 알고 그 원리에 따라 마음을 잘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속성 속에는 무한한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지만 이 모두를 종합하여 두 가지 맥락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체성의 속성과 작용의 속성이다. 이 체성의 속성을 진공(眞空)이라 하고 작용의 속성을 묘유(妙有)라고도 한다. 진공이란 모든 것들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하고, 묘유란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처럼 마음의 체성과 작용의 속성을 통해 진공과 묘유라는 마음의 원리를 도출할 수 있다. 혹자는 진공과 묘유는 불교적 용어로서 유가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논어〉만 보더라도 곳곳에서 마음의 진공과 묘유의 원리가 내포되어 있는 구절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음공부는 마음의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진공과 묘유의 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하는 것일까? 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마음속에 텅 비우고 없애야 할 방향과 모두 갖추어 있게 해야 할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유(有)에서 무(無)로 가는 '비움'이라면, 후자는 무(無)에서 유(有)로 가는 '채움'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이 갖추고 있는 두 가지 맥락이며 마음결을 가꾸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유가의 고전을 연구하여 유가의 가르침이 우리의 마음결을 가꾸어가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추출하고 프로그램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논어〉는 진공과 묘유의 원리가 내포된 인문학 고전.

〈논어〉, 흰 마음과 검은 마음
유가의 고전 중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논어〉이다. 〈논어〉는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결집한 공자의 어록으로 〈논어〉를 통해 공자의 이상과 철학뿐만 아니라 그가 춘추시대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그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처는 정법(正法)과 상법(像法) 그리고 계법(季法)으로 구분하여 자신의 법에 대한 시대의 변천을 예언한 적이 있다. 그 변천되는 주요 원인은 경전이 번거하여 후세사람이 그 본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력을 잃은 데 따라 그 행동이 어리석어져서 정법이 자연 쇠하게 되는 데 있다. 유가의 경전 역시 불법과 같은 시대의 변천을 따르고 있다.  〈논어〉만 보더라도 그 수많은 주석서를 일생동안 다 보고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논어〉를 통해 공자의 마음결을 직접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공자의 말씀을 해석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자 너머에 있는 공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가 〈논어〉의 구절을 자상히 살펴본다면 공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마음의 상태를 '흰 마음'과 '검은 마음'으로 구별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정근(2012)은 〈논어〉에서 군자의 마음은 투명하고 주위와 끊임없이 교류하여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하얀색으로 그 마음의 특성을 상징할 수 있다고 본다. 공자는 사람이 군자의 흰 마음을 추구하기를 요구했으므로 이것이 공자의 마음에 대한 관점을 대표한다.

한편 〈논어〉에는 군자의 흰 마음뿐만 아니라 소인의 검은 마음도 들어 있다. 검은 마음은 자신과 주위 사람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자신의 이해와 욕망을 가장 우선시한다. 공자는 검은 마음의 사람이 많아진다면 공동체가 타락하고 부패한다고 보았기에 그들은 수양과 감화를 통해서 변화되어 할 대상이다. 철학사에서 공자는 수양을 통해 흰 마음을 키우고 검은 마음을 줄여야 한다는 마음 이론을 형성하는데 초석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마음을 줄인다는 것은 진공의 체성에 근거해서 유에서 무로 가는 비움의 공부를 뜻하며, 흰 마음을 키운다는 것은 묘유의 작용에 근거해서 무에서 유로 가는 채움의 공부를 뜻한다. 또한 비움은 고통과 번뇌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치유'와 연결되며, 채움은 충효열(忠孝烈)과 같은 덕목을 단련한다는 의미에서 '도야'와 연결된다.

인문학은 인간의 마음결을 알아가는 학문이다. 그중에서도 동양의 고전에 담긴 마음결을 가꾸는 방법은 비움과 채움 또는 치유와 도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고전에 담긴 성인들의 마음결 가꾸는 지혜를 깨달아서 행복한 인류공동체를 가꾸어가길 바래본다. 필자도 이를 위해 세상의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

박세웅 교무 

 

 

 

 

 

 

 

 

 

 

 

ㆍ성균관대학교 유학과 석사
ㆍ중국 북경대 철학과(중국철학) 박사
ㆍ현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

[2019년 7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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