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법인성사 100주년이 되는 해다. 법인성사는 구인선진들이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기도를 올려 법계로부터 인증 받게 된 창립정신의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창생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구인선진들의 역사는 교단사에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중요한 교단 역사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과제가 있다. 법인기도봉의 배치문제다. 당시 '어떤 방법으로 기도봉을 정했는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옥녀봉에서 기도한 선진은 누구였을까'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법인기도봉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명바위에 새겨진 구인선진의 이름이 나이순으로 명시된 것을 근거해 마촌앞산봉을 기점으로 나이순으로 기도봉을 정했다는 의견과, 또 하나는 '불법연구회창건사'에 건·감·간·진·손·이·곤·태의 방위를 정해 기도를 올렸다는 내용을 근거로 기도봉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당시 법인기도봉 배치는 구인선진의 나이순으로 나열된 의견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팔괘방위의 배치법이 주목받게 된 것은 원기89년 교화연구세미나에서 서문성 교무가 '불법연구회창건사'를 근거해 기도봉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부터다. 팔괘 방위법으로 기도위치를 선택한 근거가 창건사를 통해 밝혀졌으며,  방위에 맞춰 기도했고, 때에 따라 바뀌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실지 와탄천 범람시 마촌앞산봉과 촛대봉은 오르지 못해 기도봉을 옮겼다는 것이다. 

이후 원기92년 중앙총부에서 '기도봉 지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게 됐다. 나이순으로 나열했다는 입장에서는 '현 기도봉이 나름의 배치원리와 기준이 있어 당시의 사실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고, 재배치론에 비해 진정성이 높다'는 주장이었다. 반대의견으로는 '기도에 직접 참여하고 정산종사가 대종사의 감수를 받아 집필한 창건사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어떤 자료를 신뢰할 수 있는가. 기도봉의 구체적 기록이 없는 만큼 종교적 상징성을 강조하자는 뜻이며 정확한 위치를 논하기보다 포괄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토론 결과 법인기도봉 재배치 논의는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결론 내리며 일단락 지어졌다. 두 주장 모두 근거가 미약한 추론이라는 것이며, 기도봉을 옮기는 변화가 있었다는 분명한 근거가 없는 까닭이라 했다. 

현재도 이같은 역사적 논쟁은 자주 언급된다. 법인성사 10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정확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교단의 입장에서 역사의 사실을 밝혀 정확한 교단사를 확립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며, 훗날 역사에도 정확한 판단과 토의 내용이 남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년 7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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