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병진년 여름밤이었다. 대종사가 모처럼 구호동 본집에서 첫돌박이 아들과 함께 멍석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삽작문 밖으로 성큼성큼 외삼촌이 걸어오더니 큰 결심을 한 듯이 털썩 멍석에 무릎을 꿇고 "성사님"하고 조카를 불렀다. 

"어째 이러세요 외삼촌!" 대종사는 탕건바람인 외삼촌을 보고 당황한듯 말했다. "성사님. 나도 지도받지라." 열한살이나 손위인 외삼촌 유성국은 막무가내로 조카 앞에 제자의 예로 무릎을 꿇었다. 유성국은 독실한 동학 신자였다. 그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큰 어른이신 천도교 3세 교주 의암 성사를 모시는 예로 조카를 대하였다. 유건 선진은 평소 갓을 쓰지 않고 탕건 바람으로 잘 다녔다. 제대로 예를 갖추자면 갓 아래 탕건을 받쳐 쓰는 것이 상례였다. 그럼에도 외삼촌은 조카에게 사제의 예는 분명히 갖추었다. 

처음에는 여덟 제자들이 스승의 담뱃대를 번갈아 피우기도 하고 맞담배도 했다. 자리에 앉을 때도 위아랫목의 질서가 없었다. 어떤 일이건 의견을 잘 내고, 앞서 나서던 유건은 사제의 예를 분명히 하고 스스로 솔선수범하며, 여덟 제자들에게 제자로서의 도를 갖출 수 있도록 이끌었다. '건'이라는 법명은 혈육의 관계를 떠난 사제의 예를 의미하는 속뜻이 있었다.

[2019년 7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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