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 이성려 망미교당 교도

원광요양원 인기수업 다도 8년
목욕봉사 20년, 행복의 원천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한 원광노인요양원 입소 어르신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은은한 차향과 함께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다도 수업이다. 8년여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환한 미소와 함께 수준 높은 차를 준비해 오는 사람은 려타원 이성려(67·麗陀圓 李聖麗·망미교당) 교도다. 

"오늘은 동방미인차를 준비했으니 어르신들 모두 예뻐지실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그가 수업을 시작했다. 치매를 앓고 있어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도 일일이 참가자들에게 차를 보여주고 향을 맡게 하고 맛을 물어보기도 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다식을 포함해 모든 차 도구를 일체 구비하는 등 대충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끝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성려 교도를 10여 년 지켜봐온 박성심 교무는 "다도 수업을 할 때 려타원님은 요양원 어르신들이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어요. 상대방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섬기고 한 번 하기로 한 일은 한결같이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분입니다"고 회고했다. 

"어르신들은 젊었을 때 늘 식기를 달그락거리며 살림을 해온 분들이라 다기를 만지면 참 좋아합니다. 말이 필요 없고 눈빛으로 대화가 됩니다. 다음 생에 며느리가 될지 딸이 될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들이 '다음 생에는 우리집으로 와'라고 하실 때는 손을 꼭 잡고 마음을 주고받지요."

그가 이렇게 좋아하는 차와 인연이 된 것은 원다회를 만나면서다. 원다회에서 1년 초급과정을 수료하고 나니 차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졌다. 바로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 입학해 3년 동안 새벽 2시까지 공부하며 차에 관한 모든 자격증을 섭렵했다.

이왕 공부하는 김에 사회복지학과와 유아교육학과 수업까지 들으며 사회복지사·보육교사·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동시에 끝낸 열혈 학구파다. 원디대를 졸업하면서 원광노인요양원 박성심 교무에게 스카웃돼 지금까지 한결같이 다도수업 무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한 번 약속한 일은 묵묵히 끝까지 하는 그에게 다도 봉사보다 훨씬 더 오래된 봉사가 있다. 원봉공회에 가입해 멋모르고 따라간 천마재활원 봉사에서 시작한 목욕봉사가 올해로 20년째다. 2002년 사회복지법인 원광노인요양원 설립 때부터 시작한 원광 목욕봉사는 현재까지 한 번도 중단한 적 없이 계속해 오고 있다.

"처음에 원봉공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봉사를 했지만 직장을 다니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봉사를 줄이게 되면서 끝까지 하고 있는 것이 목욕봉사입니다. 봉사 중에서 목욕봉사가 가장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목욕 마치고 나온 할머니들 얼굴이 반짝반짝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원디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4년6개월 동안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 원광 목욕봉사를 위해 매주 월요일은 휴무로 하며 대신 월급을 적게 받는 조건으로 취업하기도 했던 그다. 

"저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요. 자랄 때 어머니 사랑, 결혼해서는 시어머니 사랑, 성격 좋고 무난한 남편, 빗나가지 않고 성실하게 잘 자란 두 아들…. 봉사하고 베풀며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의 목욕봉사 이력은 시어머니 봉양에서 시작됐다. 결혼 초 시어머니가 지병으로 누워 움직이지 못했다. 무거운 시어머니를 홑이불 위에 뉘어서 혼자 욕실까지 끌고 가 목욕 시키는 일, 네 명의 며느리 중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을 그는 매주 2회, 2년 동안 했다. 그 시어머니가 열반 직전 그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맙다 고맙다. 내가 막내 아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너를 못 만났을 뻔했구나. 욕심도 없는 네가 유일하게 아들 욕심만 있으니 내가 죽어 귀신이 돼 네 아들 둘 꼭 도와주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다 가는지 모른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시어머니 덕분인지 그의 기도 덕분인지 몰라도 아들 둘은 무난하게 잘 자랐다. 그가 원디대 다니면서 새벽 2시까지 공부에 매달릴 때 고시 준비하는 작은 아들도 같은 시간에 공부하며 서로 격려가 됐다. 그가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기도뿐. 매일 오전10시에 교당 불단에 앉아 100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아들이 시험장에 앉으니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이 눈앞에 환하게 떠오르는데, 시험지를 보니 답이 다 보이더라고 하더군요. 한 번에 합격해주니 얼마나 고맙던지요."

요즘 그는 단장 역할에 푹 빠져 있다. 단원들의 생생한 삶의 줄기들을 하나도 놓치는 법 없이 챙겨 정신 육신 물질로 어려움을 만난 단원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일일이 기도한다. "단원들 아픔 다 챙겨서 사은님께 매달립니다. 그 다음 주가 되면 얼굴이 퉁퉁 부어도 다 교당에 오더라구요. 교화가 따로 없어요. 단원들 소원이 모두 내 소원이나 마찬가지죠." 언제까지 계속 봉사활동을 할 거냐는 물음에 계획이 어디 있냐고 한다. 그냥 할 뿐이라고.

[2019년 8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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