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9 14:20 (목)
오광익 원로교무의 교리도 산책 6. 만유 곧 만물
오광익 원로교무의 교리도 산책 6. 만유 곧 만물
  • 오광익 원로교무
  • 승인 2019.08.16
  • 호수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만유는 곧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객관적 우주만유를 표현하는 말이다. 〈정전〉 '일원상서원문'에서는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라 표현했고, '일원상법어'에서는 "이 원상의 진리를 각하면 시방 삼계가 다 오가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라고 했으며,  '천지은'에서는 "만물은 이 대도가 유행되어 대덕이 나타나는 가운데…"라고 했으며, 또한 삼학의 '사리연구' 조항에서는 "대라 함은 우주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순환과, 풍운우로상설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이라"고 해 일체만물은 우주만유ㆍ만유ㆍ만물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궁극은 만유 곧 만물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옛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맹자는 "만물 개비어아의(萬物 皆備於我矣)라 즉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했고, 노자의 〈도덕경〉 5장에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 즉 '천지는 어질지 못해 만물로써 풀로 엮은 강아지를 대하듯 한다'"고 했으며, 또한 8장에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라 즉 '최상의 착함은 물과 같다. 물은 착해서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아니하니라(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했으며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천지자 만물지역여 광음자 백대지과객(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라 즉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이라는 것은 기나긴 시간의 나그네이라'"했다. 

정호(程顥1032-1085·북송 중기의 유학자)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성즉이설(性則理說)'을 주창했다.  그가 지은 '추일우성(秋日偶成)'이라는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있는데 반짝을 떼어서 보면 "한래무사부종용 수각동창일이홍 만물정관개자득 사시가흥여인동(閑來無事復從容 睡覺東窓日已紅 萬物靜觀皆自得 四時佳興與人同)라 즉 '한가로이 하는 일 없고 다시 조용하니, 잠을 깨니 동창에 해가 이미 붉었구나. 만물을 고요히 보면 모두 스스로 득의하고, 사시의 아름다운 흥취 사람으로 더불어 한가지라'" 하였는데 여기에도 만물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만물유생론(萬物有生論)'이라는 말이 있다. 즉 '물질을 단순히 생명이 없는 무기적(無機的)인 것으로서 보지 아니하고, 물질 자체에 생명, 또는 영혼(靈魂)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말이 매우 타당하다. 대종사 말씀처럼 저 지푸라기 하나, 먼지 한점까지도 백억화신의 조화를 나툰다하였으니 생명이 있기 때문이요 살아있기 때문이니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송(頌)하기를   
만물무비활(萬物無非活)  만물은 살지 않음이 없고
군생조화부(群生造化敷)  뭇 생령은 조화를 펼치누나
아심중진비(我心中盡備)  내 마음 가운데 다 갖췄으니
막멱사방조(莫覓四方徂)  사방으로 쏘다니며 찾지 말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