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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꽃 피다] "욕심 없이 살아낸 깊고 깊은 삶의 경지, 토우에 담다"
[사람꽃 피다] "욕심 없이 살아낸 깊고 깊은 삶의 경지, 토우에 담다"
  • 이여원 기자
  • 승인 2019.08.16
  • 호수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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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무월마을 허허도예공방 송일근 작가

집도 도자기도 토우도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구체화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 한치의 틀림이 없는 이치가 담겨있다고
그는 말한다.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마음에 와닿는 사람이 있다. 나도 모르게, 마음 안에 들어와 꽃으로 피어나는 사람. 사람꽃, 송일근·정연두 부부가 사는 담양 무월마을로 향한다. 
송일근, 그는 25마지기 땅에 농사를 짓고, 그 흙으로 토우와 그릇을 만든다. '논흙으로 쌀도 짓고 예술도 짓는' 그와 함께 사는 아내 정연두, 때맞춰 씨 뿌리고, 정성 들여 가꾸고, 거두고, 나눌 줄 아는 농사꾼의 인생지기다. 이 둘은 무월리에서 허허도예공방을 꾸리고 있다.     

탯자리 무월리의 허허도예공방
담양군 대덕면 무월마을은 송일근 작가의 탯자리다. 그는 고향에 정착해 농사일을 하면서 생활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러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민중들의 절규를 보게됐다. 외면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그는 흙으로 뭉쳐냈다. 토우작가의 시작점이다. 

지독한 아픔을 초월한 이의 모습은 이런 것일까. 시간이 흘러 그의 토우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웃음이 '허허'롭다. "어느 순간 밝고 희망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웃는 얼굴, 자연스럽게 비워지는 모습, 충만하게 있으되 아무것도 없는 허허로운 경지라고 할까요." 아픔을 견디고, 그 아픔을 온전히 딛고,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 아픔이 웃음으로 승화되기까지, 그들의 아린 아픔은 세월 속에서 무뎌지고 무뎌져, 꽉 차고 텅 빈 웃음으로 그의 토우 작품 속에 표현됐다. 

그가 빚어놓은 토우는 어쩌면 그의 모습은 아닐까. 그 또한 크고 작은 아픔 속에서 삶을 살아낼 것이고, 그리하여 결국 '허허' 웃는 토우는, 욕심 없이 살아낸 그의 깊고 깊은 삶의 경지가 담길 터이다. '나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작업'이라는 그의 말이 온전하게 들리는 이유다.  

바람과 해, 별빛을 담은 집
아내 정씨의 작업실, 통유리창 너머 펼쳐지는 시골 전경이 더할 나위 없는 자연 속 풍경화다. 고향에 정착해서 마을 분에게 거저 얻었다고 할 폐가를 그가 혼자 고쳐 만든 공간이다. 기둥이 다 무너져 내릴 폐가였지만 서까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초가삼간의 전형인 서까래를 그대로 살려보자고 마음먹고 토우를 빚듯 그는 집을 고쳐나갔다. 

"마룻장은 뜯어 식탁으로 만들고 창호지 문이 있던 자리엔 통유리창을 냈어요.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넣어 흙벽을 올리고 지붕 위엔 항아리들을 이어 붙여 굴뚝을 만들었습니다." 주방 흙벽엔 '허허공방'이라는 글씨도 새겼다. 15평 허허공방에서 그는 아내를 만났고, 결혼 후 두 아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아내의 바느질 방으로, 외국인 영화촬영 숙소로, 맘 좋은 사람들이 모여 오붓하게 노는 공간으로, 사람 사는 다양한 이야기가 이 공간에서 펼쳐진다. 

부부는 이제 둘만의 노동으로 방 세 칸짜리 살림집, 두 번째 집을 지었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산에서 나무를 베고 껍질을 벗기고 깎아내 자재 하나하나를 마련했다. 목수 일을 배웠고, 바닥설비, 전기배선, 지붕, 창문설치 등 집 한 채를 짓기까지 모든 과정을 부부가 자력으로 해결했다.  

"10년 만에 집이 지어졌어요. 내 뜻대로 집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 흙, 돌이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를 온전하게 사용하면서 내가 맞춰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지붕을 얹기 전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여기에서 멈춰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밤에는 하늘과 집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그렇게 멈추고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을 절절하게 가슴에 새겼던 시간들. 공사를 시작하고 10년, 코흘리개 두 아이는 대학을 졸업했다. 지난한 세월이 녹아든 집은 공간마다 다른 계절을 품었고, 아이들의 꿈이 함께 자라는 소중한 터가 됐다. 

"집을 짓는 일도, 도자기를 빚고, 토우 작품을 하는 것도, 한치의 틀림이 없는 너무도 같은 이치입니다. 형체가 없는 흙에서 형체를 갖는 조형물로, 생활에 쓰는 그릇으로, 나의 내면을 표현해내듯이, 집 또한 나무를 가지고 나의 내면을 구체화하는 작업이지요."

집도, 도자기도, 토우도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구체화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한치의 틀림이 없는 이치가 담겨있다는 그의 내면 이야기가 이어진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해가 지는 이치 
"살면서 가장 크게 마음에 되내이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 어느 것도 한치의 틀림이 없이 다 같다, 모두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하루도 틀림없이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해가 지는데,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깨쳐내지 못해서 날마다 새로운 날들의 소중함을 모를 뿐입니다."

'살아내는 일'은 자연에서 와지는 바람, 해, 구름, 절절이 와주는 절기, 이 모든 것들에 순응하며 맞이해주는 일이라는 걸,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자라고, 생명성을 이어가는 일이라는 걸, 그렇게 한치의 틀림이 없는 이치 속에 나날이 새로운 날들임을 깨쳐 아는 일이라는 걸, 그는 수고로운 노동과 정직한 땀으로 대면했다. 

손님에게 내어줄 차를 여러 번 정성껏 우려주는 그, 문득 틀어지고 갈라진 그의 투박한 손에 시선이 머문다. 해보고 싶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살아내는 삶, 그렇게 자신의 영적인 것을 살아내는 일이란, 그만큼 자신을 내주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의 손이 말없이 깨닫게 한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그의 손에, 마음도 한참 머문다.  

무월 달빛 행복마을 이야기 
무월마을로 들어서면서 보았던 돌담 이야기를 잠깐 꺼냈다. 전라남도가 농어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시작한 '행복마을' 사업에 선정이 되고 2009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면서 그가 이장을 맡았다. 3년 동안 동네 한 바퀴를 도는 2km의 돌담을 쌓았다. 마을 입구가 트였고 안길이 포장돼 버스가 다녔다. 무월 달빛문화관을 건립했고, 마을과 관련한 옛 이름을 정리하고 고샅에는 길목 이름표도 달았다. 

"10여 년 동안 집을 지어봤기 때문에 담장의 높이, 공간구성의 자리 위치, 높낮이까지 세세하게 구체화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았던 곳이고, 나도 여기에서 태어나 죽게 되는 고향 탯자리이니 마음이 쓰였습니다." 바람 그대로, 햇살 그대로 머물다 가는 무월마을 돌담은 요란하지 않다. 단아한 자연스러움, 이들 부부와 닮아있다. 

그는 살아낸다고 말한다. 한치의 틀림이 없는 이치로, 소중한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내고 있는 송일근 정연두 부부. 사람꽃이 내 안에 환한 햇살 비춰준다.

[2019년 8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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