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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공부나 사업 알고 보면 함께하는 공덕"
[신앙인] "공부나 사업 알고 보면 함께하는 공덕"
  • 류현진 기자
  • 승인 2019.08.20
  • 호수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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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세 잠실교당 교도

잠실교당 창립 유공인
경전삼매·염불삼매·선정삼매

[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앞으로 널리 여러 사람을 잘 다스리라는 법명이니 열심히 공부해라." 신혼여행 길에 처음으로 방문한 익산총부. '영세(泳世)'라는 법명과 교전 한 권을 전해 주던 대산종사의 자상한 미소는 원불교에 대한 그의 의심의 벽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대산종사의 말씀을 그대로 받들어 실행한 잠실교당의 창립유공인 세산 오영세 신앙인(世山 吳泳世·74)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수재였다. 연합고사에서 전국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학교가 가장 즐거웠던 그는 새벽 일찍 학교로 등교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새벽 동네 부잣집 대문 앞에 사과박스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열어보았던 그는 깜짝 놀라고 만다. 그 안에는 어린아이가 얼어 죽어 있었다. 미션스쿨인 초등학교에 다니며 성경을 줄줄 외워, 미국 선교사로부터 전액 장학 유학 권유도 받을 만큼 성경 공부를 열심히 했던 그였다. "하나님의 교리는 모두 다 사랑한다고 돼 있는데, 태어나자마자 죽게 된 이유를 알고 싶어요." 하지만 이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그의 화두가 됐다.

대학 시절까지 그는 성경 공부 모임 리더도 하고 개척 교회 예배도 도와주던 기독교 신자였다. 원불교와의 인연은 부인인 정조련 교도(둥근마음상담연구센터 소장, 호법 수위단원)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결혼을 앞두고 사랑하는 여인의 종교가 원불교임을 알게 된 그는 사교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종교의 제일 높은 분이 누구인지 만나보자." 원남교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 길에 총부를 방문한 그는 대산종사를 만나고 원불교에 호감을 가지게 됐다. 

현대그룹에서 일했던 그는 신혼여행 후 중동에 무역특파원으로 떠나게 된다. 중동에서 체류하는 1년 동안 교전을 열심히 읽으며 '심오한 철학이구나. 이 정도 종교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잠실에 15평짜리 아파트를 사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자, 원남교당 교무였던 박은국 종사가 장모인 김영태 교도와 함께 찾아와 신혼집에서 출장 법회를 보게 해달라 요청했다. 그렇게 그의 신혼집은 잠실교당의 시초가 됐다. 2년 뒤 원기65년 지하 전세방을 임차해 잠실교당 봉불식을 올리고, 그는 초대 회장을 맡았다. 원기87년 지금의 잠실교당 자리에 신축 봉불을 하게 됐을 때, 그는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공부나 사업이나 처음에 몰랐을 때는 자기가 하는 것으로 아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에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때를 따라 인연이 합쳐 함께하다 보니 불사라는 것은 다 되게 되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는 원불교 봉공회의 시작에도 큰 도움을 줬다. 차원경 초대 봉공회장이 봉공회를 준비하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무역점을 기획했던 그는 당시 현대백화점의 구매과장으로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등 각종 농산물 유통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그는 유통 책임자들을 불러 봉공회장을 도울 수 있도록 했고, 무엇보다 원가로 물건을 제공할 수 있게 했다. 또 봉공회 첫 바자회를 열 때, 유명 브랜드 의류를 희사 받아 와 첫 바자회가 성공할 수 있게 도왔다. 그밖에도 백상원 교무가 러시아에서 교화할 때, 창고에 쌓인 재고 옷들을 매년 러시아에 보내 러시아 초기 교화에 힘을 보탰다. 

전생 습관이지 않았을까. 경전 읽는 것이 그렇게 즐겁다는 그는 손에서 경전을 놓아본 일이 거의 없다. 우리 경전뿐만 아니라 〈대승기신론〉,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삼매를 즐기는 그다. "경전은 부처님의 진리 방편이기에 경전을 안 읽고 범부가 지혜를 개발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봐요." 그는 한 대목 한 대목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경전에 대해 꼭 감상문을 쓴다. 경전공부하며 정리한 노트만도 30권이 넘는 그는 교당에서 교리공부반을 지도하고 있다. 

경전공부에 비해 선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그는 염불을 먼저 시작해보라는 권유에 퇴근만 하면 염불을 하고,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하는 등 수양에 힘썼다. 너무 빠지는 것이 단점일 정도로 그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대충하는 법이 없다. 〈금강경〉 독송에 공을 들이며 18분 만에 〈금강경〉 5149자를 모두 외울 정도로 달통이 됐고, 뒤늦게 선에 재미를 붙여 시간도 잊은 채 이틀밤을 꼬박 앉아있기도 했다. 이제는 비우는 공부를 하려 한다는 그는 생활 속에서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것을 표준으로 공부하고 있다. 

문국선·허광영 교무 등 여러 교무들의 지도하에 공부해 온 세월이 감사하다는 그는 현재 이종화 교무의 정성심을 배우며 젊은 교도들 교화에 힘쓰고 있다. 

"운이 좋게 이 회상에 와서, 원불교를 기연으로 훌륭한 스승님들을 많이 만났고 닮으려고 애를 쓰고,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제 공덕이 됐네요."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그가 답했다. "마음씨 좋은 아버지, 훈훈한 남편이 되고, 좋은 법동지와 함께 공부하다 어느 날 홀연히 가고 싶어요." 태산처럼 크게 느껴지는 그의 바람은 뜻밖에도 소박했다. 내 마음속 욕심의 물결도 함께 잠든다.

[2019년 8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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