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3일 평양 단군릉에서 두 번째로 열린 개천절 남북공동행사에 참석한 원불교, 불교, 유교, 천도교, 대종교 등의 남측대표단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미디어한국학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불교계 외 민족종교계는 그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에 동참하고, 남북 공동행사에 참석하며 남북교류를 모색했다. 지난해'남북교류 원불교 선포식'을 연 원불교는 '통일교화 기반조성'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교정원에 통일부원장 직제를 신설했다. 통일시대가 점점 가시화됨에 따라 전략적으로 교화거점 확보와 교화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2002년 8월29일 처음 정방산 성불사에 갈 때의 일이다. 평양을 떠나 사리원 근처에 도착하자 동행한 조계종 총무원의 한 스님이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 
주승은 잠이 들고 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1932년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성불사의 밤>이란 제목의 노래다. 노래가 끝나자 옆에 있던 북측 안내원이 분위기를 깨는 한 소리를 던졌다. 

성불사에 다시 달린 풍경(風磬) 남북 불교 교류의 한 단면
"지금 성불사에서는 그윽한 풍경소리 듣지 못합니다. 남쪽에서 오신 분들이 성불사만 방문하면 풍경을 찾는데, 6.25전쟁 시기에 미군의 폭격으로 절 건물이 불타거나 심하게 파손될 때 풍경도 없어졌습니다."

'성불사에 풍경이 없다니'모두들 의아해하면서 성불사에 도착하자마자 너도나도 우선 대웅전 처마에 풍경이 달려 있는지 확인해 봤다. 정말로 풍경이 없었다. 동행한 스님이 성불사 주지스님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니 성불사에 풍경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가 풍경을 보낼 테니 꼭 달아 놓으시오." 6년 후인 2008년 5월 16일 다시 성불사를 찾았다. 반갑게도 이번에는 풍경이 달려 있었다. 

성불사에 다시 걸린 풍경은 작지만 남북 불교 교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불교계는 1991년 10월 미국 LA에서 개최된 남북불교지도자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28년 동안 대북인도적 지원, 단청 안료와 불교 용품 지원, 금강산 신계사와 개성 영통사 중창 불사,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등 다양한 남북교류를 진행해 왔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불교계는 공동 종교행사 24건과 인도적 대북지원 6건, 공동성명서 발표 3건, 인적 교류 및 회동 3건 등 다른 종교에 비해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2011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59곳의 북한 현존사찰 및 폐사지, 절터를 전수 조사해 촬영된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의 전통사찰〉(총 10권)을 발간했다. 

이 도록에 담긴 사진들은 기존 자료를 모은 것이 아니라 북한 담당 기관인 조선문화보존사·조선불교도련맹의 협조를 받아 직접 촬영된 것으로, 북한의 전통사찰에 대한 '최초의 종합보고서'라고 평가할 만하다. 북한 전통사찰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북한 불교 연구뿐만 아니라 남북 불교교류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전제 조건이라 더 의미가 컸다. 

1957년 주지스님의 안내로 개성 관음사를 둘러보는 김일성 수상.
1998년 '관리인'의 안내로 강원도 석왕사를 둘러보는 김정일 위원장.

북한도 민족종교계와 교류에 적극적 태도
이러한 불교계의 남북교류는 북한 불교계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북한의 주요 사찰에 '관리인' 대신 주지 스님들이 임명되기 시작했다. 북측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인 묘향산 보현사에는 주지 청운 스님을 비롯해 그로부터 계(戒)를 받고 상좌가 된 백운 스님(상원암 주지), 청벽 스님(보현사 부주지) 등 20여 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다. 

평양 대성산 광법사에는 '북한 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박태화 대선사의 상좌인 주지 광선 스님, 금암 스님 등과 혜명 스님 등이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금강산 표훈사, 개성 영통사, 평성 안국사, 구월산월정사, 성불사, 양천사, 강원도 안변 석왕사 등 주요사찰에는 거의 대부분 주지 스님을 임명하고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보현사 불학원을 졸업한 새로운 세대의 스님들이 배출돼 각 사찰에 배치되고 있다. 보현사 관음전, 수충사 등에서 종교업무와 수행을 하고 있는 혜광·월광·홍법 스님 등이 대표적이고, 보현사 하비로암 주지로 있는 진명 스님은 청운 주지 스님의 아들로 대를 이어 출가한 사례다.  

외관상으로도 1950년대까지 가사를 걸친 주지 스님의 모습이 남쪽과 비슷했지만 1960년대 이후 양복을 입은 관리인으로 변화됐는데,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붉은 가사를 입고 머리를 짧게 깎거나 삭발한 스님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단군을 추앙하는 대종교 등 '토착종교'를 재평가하고, 남북간 민족종교 교류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들 종교가 민족 내부에서 발생한 토착종교로 민족애를 지니고 있는 종교라는 평가다.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 대종사에 대해서는 "강직한 민족주의자였으며 반일애국지사"였다고 평가한다. 

특히 북한은 민족종교가 자신들의 정치사상과도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천도교나 원불교에서 표방하는 '물질개벽, 정신개벽' 표어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이 민족종교계에서 성지로 규정하는 묘향산 단군사(1995년)와 구월산 삼성사(2000년)를 복원한 것도 남북교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인식과 정책 전환에는 남북 불교·민족종교계의 교류가 큰 몫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7년 5월 묘향산 보현사를 방문한 남측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청운 주지 스님. 분단이후 북측 스님들의 외관상 변화가 잘 드러나고 있다.

교류 거점 통해 성지 순례, 교류 사업 추진
남북 종교교류의 진전 속에 2000년대에 들어와 불교계는 북한 포교를 위한 두 개의 거점을 마련했다. 천태종은 2005년 개성 영통사를, 조계종은 2007년 금강산 신계사를 중창 복원하고, 두 사찰에서 남북 합동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두 사찰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끊긴 불교교류를 다시 잇는데도 중심에 서 있다. 

조계종은 신계사 템플스테이관 설립을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고, 금강산관광 재개와 맞물려 정기적으로 불교신자들의 신계사 방문을 성사시킨다는 구상이다. 천태종 역시 영통사 템플스테이 사업과 천태종의 개창조인 의천 대각국사의 열반 다례재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태고종은 금강산 유점사 복원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불교계 외 민족종교계는 그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에 동참하고, 남북 공동행사에 참석하며 남북교류를 모색했다. 특히 2002년 평양 단군릉에서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하는 개천절 행사를 성사시켰다. 이 행사에 남쪽에서는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등 다양한 종교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민족종교계는 2005년 이후 중단된 개천절 남북공동행사를 재개하고, 백두산, 구월산 삼성사, 평양 숭령전 등을 방문하는 '성지 순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남북교류 원불교 선포식'을 연 원불교는 '통일교화 기반조성'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교정원에 통일부원장 직제를 신설했다. 통일시대가 점점 가시화됨에 따라 전략적으로 교화거점 확보와 교화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교화거점으로는 현재 터만 남은 상태인 개성교당의 복원이 최우선 순위에 올라있다. 원불교측은 북한의 조선종교인협의회, 조선불교도연맹 등을 통해 수차례 개성교당을 복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긍정적 답변을 얻어놓은 상태다. 

교류의 거점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방문과 순례를 통해 포교의 폭과 깊이를 넓혀간다 게 불교와 민족종교계가 구사하는 대북 포교정책의 핵심인 셈이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현재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19년 8월2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