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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18. 특신급, 중생과 부처의 갈림길
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18. 특신급, 중생과 부처의 갈림길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9.08.23
  • 호수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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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신라의 의상대사가 〈화엄경〉의 진리를 축약한 '법성게(法性偈)'에는 "처음 발심했을 때가 곧 바른 깨달음(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불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이 순간 세워졌을 때, 그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드시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수천 년 된 나무도 작은 씨앗이 싹튼 결과다. 그러한 거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풍파도 견뎌낼 수 있는 힘과 딛고 있는 땅에 대한 굳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서원인 성불제중과 최고 법위인 대각여래위를 향한 힘이자 의지처이다. 때문에 대산상사는 정식 특신급을 "일초직입여래위(一初直入如來位)"라고 설한다.

믿음은 무엇보다도 의심이 없는 것이다. 망망한 대해를 건너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타고 갈 배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대해를 건널 수 없을 것이다. 배를 믿을 수 있을 때, 너른 바다를 힘들이지 않고 건널 수 있다. 나 자신은 넓은 우주 안에서 미미한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이처럼 믿음은 피안으로 건너가게 하는 배이자 삶을 떠받쳐주는 대지와도 같다. 알고 보면, 법신불의 무한한 은혜가 그것이다. 이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순간, 어떠한 난경과 고통의 바다도 건널 수 있다. 모든 고뇌를 뚫고, 우주와 같은 너른 법신불의 품 안으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믿음은 불법 이외의 세계로는 마음이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어떤 역경과 고난도, 어떤 즐거움과 기쁨도 이 열락의 행복을 뺏어가지 못한다. 삶은 오직 불지를 향한 열망으로 일관된다. 삼세 모든 불보살이 가는 길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산상사는 '부처님의 문패를 다는 단계'라고 한다. 우리와 불보살 성현들이 함께 손을 잡고 가는 파수공행의 길이다. 이로써 신해행증(信解行證)의 길이 펼쳐진다. 믿음으로써 모든 법에 대한 바른 이해가 이루어지고, 바른 수행의 길에 들어가며,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게 된다. 〈화엄경〉에서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체적으로 믿음은 석존이 〈아함경〉에서 "사람에게 제일의 재산"이라고 하고, 〈숫타니파타〉에서는 "거센 물결을 건너게 하는 도구"라고 설하는 것처럼 인생의 보배 중의 보배다. 믿음이 없는 삶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찌는 더위, 몰아치는 모래바람,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공간은 우리 삶을 메마르게 하는 동시에 지치게 한다. 믿음은 그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또는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충분히 실은 낙타를 몰고 가는 대상을 만난 것과도 같다.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줄 나침반이자 지칠 줄 모르는 동력을 부여하는 무한 동력의 엔진이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첫 장 '개경장'에는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알라)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나이다"라는 아름다운 구절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또한 그 찬미의 대상은 바로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법신불님'이다. 우리가 법신불에게 드리는 그 믿음의 표시는 매 순간 불법을 향한 우리의 겸손과 경외의 마음을 통해 나타난다. 진리와 법에 대한 믿음, 수행과 신앙의 길에 대한 믿음은 가장 수승한 믿음이다. 모든 믿음 중에서도 가장 고결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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