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음을 대소유무로 바라보며
원망과 감사 모두 다 진리로 신앙하길

이원선 교도

[원불교신문=이원선 교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감사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나 또한 감사일기를 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고 사은의 은혜에 대해 더 많이 느끼게 됐다.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 되던 생각도 일기를 쓰면서 생각이 정리됐고 매일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또 하루 동안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했던 몸이 일기를 쓰면서 이완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지난 20년간 수백만 명의 임상실험을 거쳐 인간의 의식 수준을 표로 만들었다. 이 표에서 감사의 의식수준은 540이다. 보통 사람의 의식수준이 175정도인걸 보면 상당히 높다. 감사일기 쓰기를 통해 나의 의식 수준의 밝기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표를 보며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생겼다. 감사를 비롯한 이해나 존경의 감정은 좋은 것, 후회, 비난, 미움, 근심은 안 좋은 것이라고 나누는 점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분명 감사와 이해의 감정도 있지만 비난과 미움의 감정도 있다. 그러면 나의 의식수준이 낮은 것이고 안 좋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원불교에서는 내 안에 있어지는 원망과 감사 모두 진리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의식의 분류표를 보고 나서 경계를 당해 감사한 마음보다 원망한 마음이 나오는 나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이 왔다. 감사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책과 감사함이 나오지 않는데 억지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위선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진정한 감사란 무엇일까? 진정한 감사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나의 마음을 충분히 만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생활 속에서 사물의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도 붙잡으면 악이라고 한 대산종사의 법문처럼 감사를 강하게 붙잡고 있으면 마음의 자유를 얻기는 힘들다. 작은 선에 사로잡히기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어둠과 밝음의 양면성을 다 묘유로 받아들이며 공부할 때 애써 찾지 않아도 진정한 감사가 있어진다. 마음을 대소유무로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공부 일기가 필요한 것이다.

마음공부는 경계를 알아차리고 멈추고 원래 자리에 대조하는 공부다. 특히, 심신 작용 처리건으로 일기를 기재하다보면 한없이 원망스럽던 상대가 은혜로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와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됐다.

마음일기 기재를 통해 경계를 따라 슬프고 화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지는 나도, 감사하고 행복한 나도 모두 나의 모습임을 알고 나니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수준 표에서 150의 미움의 감정도 마음공부로 순식간에 540의 감사로 나도 모르게 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긍정적 의식 에너지, 부정적 의식 에너지로 나뉜 의식표에 자유로워졌다.

감사일기가 우리에게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감사에 초점을 두고 일기를 쓴다면, 내 안의 긍정도 부정도 다 나를 통해 나와지는 것인데 긍정만 받아들이고 부정은 외면한다면 나를 대소유무로 원만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원망할 일을 인정하고 원망 자체를 받아들이며 원망을 신앙함으로써 진정한 감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세상을 감사에 초점을 맞추어 좋은 쪽으로 돌리는 공부보다는 원불교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마음공부 일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대소유무로 바라보며 원망과 감사 둘 다 진리로 신앙하길 바란다. 그때 있어지는 마음을 만나는 공부를 통해 마음의 자유를 얻어 진정한 감사생활로 낙원세계를 건설하길 소망해본다.

/서마산교당

[2019년 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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