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법명 성종) MBC 기자가 별세했다. 그는 언론자유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힘썼던 이 시대 참 언론인이었다.

이용마 기자는 1969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후 박사까지 마쳤다. 1994년 MBC에 입사한 그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장기파업을 주도한 것을 사측이 문제 삼아 2012년 3월 해직됐다가 2017년 12월 복직됐다.

그는 복직 후 첫 출근에서 이 시대 모든 기자가 새겨야 할 말을 남겼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주는 것일 겁니다."

사실 언론학을 공부한 기자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용마 기자는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기자였다. 손석희 JTBC 사장의 말처럼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후배에게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을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는 점'을 꼽을 정도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언론인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막연히 관료가 되고 내가 잘되겠다는 꿈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품고 살았다. 그가 품은 꿈은 '우리 사회를 더욱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주어진 조건에서 그 꿈을 실현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사회적 다수와 약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볼 때 비로소 언론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말한 그는 "언론이 자유로워야 사람들이 현재 생각하는 것, 미래를 위해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의제가 형성돼 하나씩 해결되어 나간다"고 주장했다.

이용마 기자는 공동체를 사랑했고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 믿었다. 나 혼자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혜를 함께 빌릴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꿈꿨다. 집합적인 지혜를 보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염원했다.

공익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 그의 정신은 원불교가 지향하는 무아봉공과 참 닮았다. 원기72년 서전주교당에서 입교한 그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원불교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 현재 모친은 일산교당, 장인·장모는 분당교당 소속이다. 종재식은 유족의 뜻에 따라 누나가 다니는 강남교당에서 10월8일 거행될 예정이다.

"나의 꿈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두 아들에게 한 마지막 부탁을 우리도 기억하며 되새겨보자.

[2019년 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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