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불자의 노래에 이어서 교도의 노래가 나온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느낌의 곡이다. 불자와 교도가 두 음악을 비교해봐도 그 성격이 다름을 알 수가 있다. 좋아하는 성가의 내용에 따라서 내가 불자의 입장인지, 교도의 입장인지를 따져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교도의 노래는 불자의 노래보다 더 힘차고 명확한 느낌이 든다. 변화에 대한 확신의 감정이 시작부분부터 가득하다는 생각이다. 

원불교에서 교도는 입교를 하고 법명을 받은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소태산 대종사가 구인제자들에게 법명을 내리면서 전한 정신을 새겨보면 좋겠다. 법명을 받고 원불교도가 된다는 것은 온전히 새로운 삶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성가에서도 살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 '부처님 법바다에 반야용선 띄우고'에서 반야용선은 반야의 지혜를 생사의 고해를 건너가는 배에 비유하는 말로 줄여서 반야선이라고도 한다. 세차고 사나운 삶의 바다를 건너가려면 반드시 반야의 지혜가 있어야만 열반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돗대와 정의의 노가 가사에 나오는데, 처음에는 부처님 법바다로 시작했지만, 중반부에 나오는 이 진리의 돗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 그리고 정의의 노는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표현하는 말이다. 원불교도의 정체성을 노래로 일깨우는 부분인 것이다. 

일원의 진리와 인과보응, 불생불멸, 대소유무의 이러한 이치들을 신앙하고 공부하며, 사은을 화신불로 모시고, 삼학수행을 통해서 생활 속에 불법을 나투는 종교의 신자라는 확신이 가득 차 있어야 하겠다. 삼학 중 작업취사에서 살펴보면, 정신수양을 통해 정신의 자주력을 얻고, 사리연구를 통해 지혜를 얻어서 작업취사를 함에 있어 정의로서 실행하는 실행의 힘을 얻기 위함을 '정의의 노'를 저어라고 표현했으리라 본다.

이러한 마음으로 부처님 법바다를 노저어가면, 이절에는 희망의 법바다를 만나게 된다. 음악적인 비장미도 있지만, 이러한 마음을 갖고 생활을 한다면 원불교 교도는 변화에 대한 비장함을 품고 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산선학대학교

[2019년 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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