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저축조합을 설립해 그 자산으로 길룡리 해안 간석지를 막았다. 언을 막아 농토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원기3년 4월에 착공, 원기4년 3월 2만6천여 평의 간척답을 준공했다. 조합원들 가운데 한사람이 기념비를 세우자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비용이 없었고, 칠산 유건선진의 건의로 옥녀봉 기슭의 바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제명을 해 두자는 의견을 제안해 채택됐다. 

옥녀봉 중턱 3m여의 높이 자연석바위에 시멘트를 가로 90㎝, 세로 45㎝의 판처럼 바른 후 간척사업의 시(始)와 종(終), 설시원(設始員)의 제명(題名)을 한문으로 오른쪽에서부터 세로글씨로 음각했다. 정관평 기념비인 일명 '제명바위'의 설시원 이름에는 조합장 외 8인을 새겼으나 8인은 법명이 나오기 전이라 호적명으로 새겼다. 이렇게 정관평 제명바위는 원불교 최초의 금석문이며, 가장 오래된 기록문으로 창립정신의 상징이다.

[2019년 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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