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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19. 세계는 법과 마의 전투장
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19. 세계는 법과 마의 전투장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9.08.29
  • 호수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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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석존이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마왕 파순이 다가와 물었다. "사문이여, 너는 대체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원하는가?", 이에 석존은 "내가 원하는 것은 슬픔도 근심도 없는 그곳, 안락하고 평화로운 열반성(涅槃城)에 이르는 것이며, 윤회의 길에 헤매면서 고뇌에 빠져 있는 이 중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마침내 석존은 파순을 물리치며 성도하게 된다.

마왕 파순의 원래 이름은 마라(Mara), 즉 죽이는 자 또는 파괴자라는 의미다. 이 마라는 까마(Kāma), 즉 사랑 또는 욕망의 신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석존이 싸운 것은 이 죽음과 욕망이다. 6년간의 수행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무위와 무소작과 정념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대각했다. 〈장아함경〉에서 석존은 중생의 욕계에는 지옥에서부터 12세계가 있는데 마지막이 마왕이 사는 마천(摩天)이라고 한다.

마는 곧 번뇌로 분열되고 동요된 마음을 말한다. 마왕 파순은 애욕(愛欲), 애념(愛念), 애락(愛樂)이라는 세 딸이 있다. 또는 신마(身魔, 번뇌), 욕마(欲魔, 욕망), 사마(死魔, 죽음), 천마(天魔, 외부의 마장)로 나누기도 한다. 마는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알아차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법계의 법과 마계의 법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태대사는 〈마하지관〉에서 불계의 진여와 마계의 진여는 같은 진여이자 평등한 하나의 상(相)이라고 한다. 일심이 곧 법계며, 그것이 흔들리면 곧 마계인 것이다.

법마상전급은 석존의 수하항마와 같이 법과 마의 치열한 격전장이다. 성도한 후에도, 무여열반에 들 때도 파순은 석존에게 다른 길로 가도록 유혹한다. 마왕은 윤회를 이끄는 악의 화신이다. 거기에서 불행, 고통, 죄악, 슬픔, 절망이 싹튼다. 마음의 탐진치가 그렇게 만든다. 법마상전의 최후 격전지는 이 삼독심이 일어나는 장이다. 매 순간 낙원과 지옥의 갈림길이다. 대산종사가 늘 경계하듯이 자칫하다간 오도가도 못하는 중근기에 떨어질 수 있다.

오늘날 또한 인류는 이러한 법마상전의 세계에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자기중심주의와 인류의 분열적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끝없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이를 보여준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의 난관을 공공의식으로 풀어가야 함에도 개인의 욕망이 무한정 보장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욕망의 구조화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임에도 상대방을 타자화하고, 고립시키고, 적대시한다. 화면과 지면을 덮는 숱한 불행한 뉴스는 이러한 비극의 현실을 보여준다.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야 함에도 오히려 우리의 정신은 포로가 된 상황이다.

마왕은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 물질의 주인이 돼 문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인간 정신이, 욕망이 투사된 물질의 도구가 되어가는 전도된 상황이다. 무상한 세상의 고통을 직시하고, 무아의 근본을 통찰하며, 무한한 은혜로 둘러싸인 이 실상을 마음 깊이 느끼는 것, 그리하여 사욕을 벗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이웃과 사회에 보은하는 삶이 마왕에게 그 틈을 허용하지 않는 역공일 수 있다. 저 피안의 언덕에서 삼세의 부처님들이 우리에게 법마상전의 강을 건너 오라고 격려의 환호를 하고 있다.

/원광대학교

[2019년 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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