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 / 주차장약국 허희자 약사
따뜻하게 보듬는 동네 사랑방
일원상부처님, 원망이 감사로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빠져 나온 어르신들이 여름 한낮 불볕을 피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선다. 문이 열리면 센서에서 울리는 벨소리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멘트가 약국 안 공기를 환하게 갈랐다. 진열장 너머에서 인자한 미소를 띈 약사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며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손에 쥐어준다. 시외버스 시간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며 소파에 눕는 할머니에게는 박스 상자를 베개로 내어준다. 

마치 시골 마을 어귀 큰 정자나무 그늘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짐작했듯이 약국이다. 진주시 장대동 진주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주차장약국'이다. 이 분위기의 주인공은 허희자(77·법명 옥진·부산교당) 약사로 50여 년의 경력 동안 그가 보살핀 환자 수는 짐작조차 어렵다. 

"진주시지만 여기는 시외터미널 앞이라 산청, 함양, 하동, 남해, 고성, 합천 등 타지에서 온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아 마치 시골 약국 같아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도 약국 직원이 고령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할아버지의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모습은 늘 있는 듯 자연스러웠다. 깔끔하게 정돈됐지만 왠지 차가운 느낌이 들어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문을 나서게 되는 도시 약국과는 다른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환자들도 약을 받아들고 금방 돌아서지 않고 이것저것 자세하게 물어보기도 하고 처방약과 상관없이 아픈 곳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여기까지 약 타러 오는 단골 고객도 있어요. 똑같은 약인데 우리 약국에서 사가야 효과가 있다고 자녀들에게 고집을 피웁니다. 플라시보 효과지요."

두 시간 동안 약국에 앉아 지켜보니 그는 약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 있었다. 급체로 속이 아픈 환자는 복부를 손으로 눌러 트림을 뱉어내게 해서 돌려보냈다. 오랜 임상 경험은 약이 아닌 지압으로도 환자를 치료해내게 만들었지만 배경은 사람에 대한 정성이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나도 거기가 아파요. 따뜻하게 문질러 줘 환자가 풀리면 그때서야 안심이 됩니다."

그가 부산 영주동 대원약국을 시작으로 35년여의 부산 생활을 접고 진주에서 터를 잡은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공부가 가장 쉽고 좋았던 그가 어머니의 권유로 이화여대 약학과를 선택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남편이 일찍 열반했지만 자녀들을 무리 없이 키워낸 것, 재테크에 재주가 없어 크게 불리지는 못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퇴직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전문직을 선택한 덕분이다. 

"50여 년 종사하는 동안 변화가 많았습니다. 의약분업 이후 처방전 약만 다루게 되니 일이 줄었고 요즘은 컴퓨터에 입력하면 자동포장기계에서 완성돼 나오니 훨씬 수월합니다."

조제가 자동화됐다고 하지만 기계가 사람 손을 따라가지 못해 오류가 발생하기도 해 꼼꼼하게 검수하는 것은 약사 몫이다. 의사가 내린 처방전이 완벽하지는 않아 자주 바꿀 때도 많다. 그의 약국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10년 이상의 단골이라 체질을 잘 알고 있고, 환자도 의사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약국에 와서 그에게 세정을 털어놓는다. "이 약을 먹으니 졸린다, 속이 아프다, 어지럽다"등을 토로하면 그가 병원에 연락해 의사와 조율해 약을 바꾸기도 하고 처방전을 새로 받아오기도 한다. 간혹 환자와 동행해 병원에 다녀오기도 한다. 급속한 사회변화에 대응이 느린 고령의 환자들에게 이웃처럼 편하고 따뜻한 그의 정성이 약국을 장수하게 하는 강점인 셈이다. 

"가끔 늦게 출근하면 환자들이 제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어디 아프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주니 고맙지요. 모두 부처님들입니다."

조제실에 걸려있는 법신불 일원상이 그의 마음을 짐작케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일원상 앞에 깨끗한 물을 올리고 사배 드리며 마음을 챙긴다. 조석으로 독송하는 일원상서원문은 그에게 하루를 지탱하게 해주는 주문이다. 남편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열반하면서 마주한 절망이 원불교를 찾게 해 39세에 입교했다. 교전을 읽는데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라'는 말씀은 그의 삶을 180도로 바꿔 놨다. 남에게 해코지 하지 않고 살아온 그의 삶에 왜 이런 비극이 왔느냐는 원망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환자들은 매우 거칠기도 하지만 결국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맞추면 모두 다정한 사이가 됩니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은 다 부처님이니까요." 이처럼 그의 처처불상 사사불공 공부는 예전에 부산에서 근무할 때는 동래원광노인요양원에서 5~6년 간 의료봉사로, 진주에서는 진주·산청·합천 등지의 요양원 물품 후원으로 실천한다. 

"거룩한 회상에 참예한 행복, 늘 도우시는 부처님 위에 계시사 우리를 지켜주시리."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이 성가가 그의 약국 경영 비결임을 약국 문을 나서는 환자들이 알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019년 9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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