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마침표를 찍으면 도가 아니듯이(道可道非常道), 정답은 없고 명답만 있듯이(無有定法) 스승은 똑같은 질문을 하는 열 명의 제자에게 각각 다른 답을 합니다. 한 제자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지도인은 오전과 오후의 답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문답은 공부의 방향로를 제시할 뿐입니다. 우리 각자 자신의 삶을 산 경전, 큰 경전으로 삼고 지도인에게 문답하고 감정과 해오를 얻으며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공부인: 추석 연휴에 시댁에 가야 하는데 너무너무 가기 싫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에요. 답답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말씀드리니, 시부모님 미워하는 마음 하나 못 다스리면서 마음공부는 왜 하냐고 하셨습니다. 엄마 말씀대로 마음공부 한다는 사람이 왜 이 모양일까요?

▶지도인: 마음을 공부한다고 해서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전에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경계로 받아들여지고 내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사회적 규범으로 마음들을 억누르지 않고,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만나게 되니까요. 그러다 보니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예전보다 감정의 변화가 더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항마위도 번뇌가 없는 것이 아니다. 비옥한 땅일수록 풀이 더 무성하고 많이 나온다. (…) 부처님의 마음이나 중생의 마음은 똑같은 번뇌가 있다." "주인이 항상 풀을 뽑아주므로 옥토가 되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대산종사법문집3〉, 법위 8).

▷공부인: 제가 은연중에 경계를 대해서 아무런 마음이 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군요. 그래서 더 힘들었고요. 마음공부하니까 시부모님을 만나도 좋아하는 마음만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싫다는 마음이 나오니까 더 당황했던 것 같아요. 

▶지도인: 마음을 공부한다는 건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진 마음"을 '묘하구나!'하고 마음 작용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효도해야 한다는 도덕적 관념으로 일어나는 마음을 무시하고 누르지 않고, '싫어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왔을까?' 신기하게 바라보면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원래는 싫다, 좋다하는 분별이 없건마는 묘하게 싫다는 분별이 있어졌구나!'하고 말이죠. 

▷공부인: 시댁에 가야 하는 상황도 그대로이고, 시댁에 가기 싫다는 마음도 그대로인데 제 마음을 마음 작용의 원리에 대입해주시니 제 마음 작용이 참 묘하게 느껴지네요. 
제가 원래 시부모에게 불효하는 나쁜 며느리가 아니라 경계 따라 싫은 마음 작용이 나온 것이네요. 그리고 시댁에 항상 가기 싫고, 시부모님이 항상 미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어요.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시면 고맙고,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걸 보면 애처롭습니다. 

▶지도인: 이번 추석 연휴에 시부모님을 만나면 정말 다양한 마음이 나올 겁니다. 어느 때는 고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싫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애처롭기도 하고. 어른들께서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산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인간관계를 전체와 부분과 변화(大小有無)로 보는 원만한 관계 공부인 것 같습니다. '고운 것'만 정이라고 고집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은 만남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공부인에게 시부모님이 좋은 시부모일 때도 있고, 나쁜 시부모, 이상한 시부모일 때도 있는 것처럼 ○○공부인도 시부모님에게 어느 때는 좋은 며느리지만 어느 때는 나쁜 며느리, 이상한 며느리이기도 할 겁니다.

▷공부인: 정말 고맙습니다. 시부모님께 효도하러 가야겠다는 다짐보다는 마음 작용을 공부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에서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왔다는 것을 염두에 잊지 않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가는(〈정전〉 무시선법)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 심지는 원래 시부모님이 싫다, 좋다하는 분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어느 때는 시부모님이 좋다는 분별이 있어졌구나, 어느 때는 싫다는 분별이 있어지는구나'하고 말이죠.

/교화훈련부

[2019년 9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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