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물질문명 중심 세계에서
정신문명과 도덕문명 시대의 도래 예견

새 회상 건설과 법을 제정할 때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는
참 문명세계 열 것을 천명

민족과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법인기도'라는 종교적 행위 통해
인류 구원을 추구

새로운 정신문명의 핵심은
'부처님 도덕'으로 불법의 대의 실천해야 가능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본고는 원불교 '법인기도'가 근·현대 종교사의 맥락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원불교를 '민족종교'나 '민중종교'로 규정해 온 기존의 연구 관점을 벗어나 '문명'의 관점에서 법인기도를 조명하고자 한다. 아울러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등 소태산대종사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문명'의 인식을 당시의 세계 사상의 흐름을 바탕으로 바라보면서 원불교 법인기도와 소태산의 '정신문명'이 근·현대 종교사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민족종교'·'민중종교'와 원불교
일제강점기 원불교는 '유사종교'였고, 해방 후에는 '신흥종교'로 분류되다가 1980년대 이후 '민족종교' 또는 '민중종교'라는 틀에서 이해되어 왔다. 

1983년 편찬된 〈한국근대민중종교사상〉에서는 '민중종교'를 '관제·왕실·귀족종교를 통해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민중의 삶과 신앙'이라 했고, 1985년 윤이흠은 '민족종교'를 '한민족의 단일공동운명체 의식이 포함된 종교개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류병덕은 민중종교의 '지향하는 목표가 세계적이고 또 그들이 내놓은 교리 속에는 보편성·세계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면서 '민중종교'를 보편종교의 시각에서 이해하려 했다. 

논자는 류병덕의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 원불교 법인기도와 법인정신의 경우 '민족'과 '민중'의 틀로는 이해하는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시각이 아닌 '문명'의 관점에서 법인기도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했다. 나아가 소태산의 '문명' 이해를 통해 원불교의 종교적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문명의 '개조론'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세계적으로 두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1914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며, 다른 하나는 1917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설립이다. 특히 3천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은 선진문명의 상징이었던 서구열강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 자기파멸적 전쟁이었고, 많은 지식인들은 물질문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문명론'과 '사회진화론'의 허구성을 자각하게 된다. 따라서 조선을 포함한 세계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문명의 좌표를 찾기 위해 '개조(改造)'를 외쳤고, '구세계'의 종말과 '신세계'가 탄생을 예언하는 '말세'의 풍조도 크게 유행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나 이돈화나 한용운의 종교개조, 도덕개조, 생활개조 등 인민의 정신을 개조해 가야 한다는 내적 개조론이 등장한다. 특히 한용운은 물질문명보다 정신문명을 중시하는데, 다만 이들의 개조론은 주로 '민족'의 정신개조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소태산의 '정신문명'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소태산은 세계문명의 흐름을 어떻게 보았을까? 

먼저 소태산은 "지금 세상은 전에 없던 문명한 시대가 되었다 하나 우리는 한갓 그 밖으로 찬란하고 편리한 물질문명에만 도취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에 따르는 결함과 장래의 영향이 어떠할 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대종경〉 전망품 21장)이라 해 당시 지식인들과 동일하게 물질문명 중심 시대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병폐'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소태산도 당시를 '말세'로 인식하는데, '근래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은 말세가 되어 영영 파멸 밖에는 길이 없다고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노니(중략)돌아오는 세상이야말로 참으로 크게 문명한 도덕 세계일 것'(〈대종경〉 전망품 19장)이라고 해, 과거 물질문명 중심 세계가 끝나고, 새로운 정신문명=도덕문명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다.

소태산의 '문명' 이해는 신지식인들이 주창하는 정신문명 논리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태산은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고 해, 물질문명을 반드시 배척할 것이 아니라 정신문명이 주도하는 속에서 물질문명을 잘 활용해 두 문명이 병진해 가는 이상적 문명세계를 구상했다. 이는 서구 중심의 물질문명을 배척과 개조의 대상으로 보았던 당시 신지식인이나 종교지도자들과 확연히 다른 소태산의 독창적인 '문명'론이다.

보편적 인류 구제의 길, '법인기도'
그렇다면 소태산의 새로운 '도덕문명'에 대한 선언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1918년 방언공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소태산은 "우리가 건설할 회상은 과거에도 보지 못하였고 미래에도 보기 어려운 큰 회상이라, 그러한 회상을 건설하자면 그 법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며" 라고 해 방언공사가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는 '참 문명세계' 건설의 시작임을 알렸다. 그리고 이러한 소태산의 '문명'이 종교적 의미의 '정신문명'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법인기도'다.

〈불법연구회창건사〉에 보면 소태산은 '현하 물질문명은 금전의 세력을 확창하게 하여 줌으로 금전의 세력이 이와 같이 날로 융성하여지니 이 세력으로 인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모든 사람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 것'이므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욕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기도'하여 천의의 감동을 얻으라고 했다. 

물질문명의 가장 큰 문제를 '금전의 세력'이라고 한 것은 서구문명의 근간인 '자본주의체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며, 이는 반자본주의를 외쳤던 당시 세계 지식인들의 '개조론'과 상통한다. 한편 방언공사나 금주단연, 구습의 폐지 등의 실천은 사회경제적 환경변화를 통해 근대화를 지향했던 당시의 반봉건 근대화의 방향과 일치한다. 다만 소태산은 반자본과 반봉건적 근대화라는 사조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민족'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법인기도라는 종교적 '기도'를 통해 인류와 창생의 보편적 구제를 추구하는 것으로 새로운 '참 문명세계'를 건설하고자 했다는 점이 특징이 된다. 당시 국내의 종교는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문명'을 표출한다. 

하나는 '민족'의 개조를 통해 식민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근대 '국가' 건설을 주도하는 속에서 나타나는 '문명'이며, 다른 하나는 서구와 일제의 멸망 이후 새로운 '왕조'의 도래를 갈망하는 봉건적 성향이 강한 '문명'이었다. 이처럼 대부분이 '민족'이나 '왕조'의 틀에서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기대하던 시점에 소태산은 보편적인 인류 구원의 시각에서 정신문명을 중심으로 물질문명을 활용하는 도덕문명을 구현하고자 했다. 법인기도는 원불교가 세계보편종교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인기도를 통해 볼 수 있는 소태산의 '정신문명'은 개인의 욕심을 넘어 오직 '무사(無私)'의 순일한 생각으로 창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 실천에 의해 '도덕문명'이 중심이 되는 낙원세계를 완성하고자 했다. 

법인기도는 그러한 새로운 문명세계의 창출을 위해 구인제자가 겪어야 했던 죽음과 재생의 과정이었으며, 거듭난 제자들에게 소태산은 '세계 공명(公名)'의 이름을 주었다. 소태산의 제자들이 정신문명 세계를 개척할 선각자요 지도자로 거듭난 것이 이른바 '백지혈인'의 법인성사인 것이다.

소태산의 '도덕문명'
그렇다면 소태산이 제창한 '정신문명=도덕문명'의 실체는 무엇일까? 소태산은 법인기도를 마친 후 새 회상 창립을 선언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데 노력하라'고 했다.

소태산은 물질문명이 만연한 세상을 개조할 새 정신문명의 핵심으로 '부처님의 도덕'을 제시한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자는 것이 바로 원불교의 정체성이다. 법인기도는 원불교의 정신적 방향을 세상에 표출한 첫 출발이었다.

※ 본 논문은 영산선학대학교 선학연구원과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주관한 법인성사100주년기념학술대회 발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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