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전체와 부분과 변화(대소·유무)로 원만하게 봐야
일본의 부분을 전체로 보고 일본 자체를 적대시하지 않도록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마침표를 찍으면 도가 아니듯이(道可道非常道), 정답은 없고 명답만 있듯이(無有定法) 스승은 똑같은 질문을 하는 열 명의 제자에게 각각 다른 답을 합니다. 한 제자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지도인은 오전과 오후의 답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문답은 공부의 방향로를 제시할 뿐입니다. 우리 각자 자신의 삶을 산 경전, 큰 경전으로 삼고 지도인에게 문답하고 감정과 해오를 얻으며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공부인: 1970년에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희생된 유태인을 기리는 위령탑에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수상인 아베는 사과는커녕 경제보복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뻔뻔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지도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일본은 무조건 싫다는 맹목성에 빠질까 걱정입니다. '이웃이 싫으면 이사 갈 수 있지만, 이웃 나라는 싫어도 이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 나라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말이 나왔을 겁니다. 이웃 나라와는 숙명적으로 적대와 우호 관계가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가장 친하면서도 많이 싸우는 형제들처럼.
일본의 한 공동체의 지도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부인은 한국인이었는데 일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얘기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다 들은 후 "일본 사람이 다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다 그런 것이 아니고"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에는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에 찬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일 갈등을 우려해서 '노 아베' 집회를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하고,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더라도 일본을 전체와 부분과 변화(大小 有無)로 원만하게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부분을 전체로 보고 일본 자체를 적대시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전체는 정말 다양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이러이러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다양한 부분은 계속 변합니다. 

▷공부인: 일본의 부분을 전체로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딸아이가 생각나네요. 딸아이는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저는 일본은 우리나라를 짓밟은 나쁜 나라이고, 문화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우수하다는 관념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딸아이가 일본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딸아이의 간절한 바람으로 가족 여행을 일본으로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일본 사람들의 친절하고 예의 바른 태도와 장인정신,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며 혼란스러웠습니다. 보지 않았을 때는 일본이 무조건 싫었는데 막상 가보니 저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뭐라 단정 지을 수 없었거든요. 

▶지도인: 혼란스럽다는 건 고정관념(분별성과 주착심)이 깨졌다는 겁니다. 일본은 나쁜 나라, 문화적으로 열등한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일본의 전체와 부분과 변화를 볼 수 있게 된 거죠. 일상에서도 혼란에 빠질 때가 원만한 시각으로 나와 세상을 만날 좋은 기회입니다. 미운 사람을 만났을 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했을 때, 실망스런 마음이 들 때도 혼란을 느낀다면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사람, 그 일, 그 상황을 전체와 부분과 변화로 보게 되니까요. 그리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일관계가 이번 일을 겪으며 상생과 평화의 관계로 나아갈 겁니다. 한국에서 일본을 원만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본에서도 한국을 원만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공부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상생과 평화의 관계로 변할 것을 알고 해야겠네요. 말씀해주신 대로 일본 그 자체에 대한 적대가 아니라 지금 '그' 어리석은 선택을 한 아베 정권과 부당한 경제보복을 비판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 반성을 요구할 때도 일본의 전체와 부분과 변화를 보며 해야겠습니다.

[2019년 9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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