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백현기 교도] 학교가 없던 시절에는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좋은 본보기를 보이고 아이들이 그 모습을 잘 따라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요체였다. 하지만 산업화를 겪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정형화된 지식의 전수와 사회개조가 필요하게 됐다. 

학생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보호)되어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배울 수 없는 지식들을 학교에서 배웠고, 사회를 개조하는 의무와 권리를 부여받았다.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근대교육의 역사가 그러했고 우리 사회에서 학생운동이 사회개혁의 선봉을 차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저임금 모방생산단계를 넘어서 우리 경제가 세계시장에서 본격적인 기술경쟁단계에 들어서게 되자 똑같은 학생을 찍어내는 학교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때맞춰 교육수요에 따른 다양화를 내세우며 특목고, 자사고 등을 도입했지만 이는 소수의 창조적인 개인만 남기고 다수를 버리는 차별화교육과 다르지 않았고, 그 결과 교실붕괴를 넘어서 일반고 슬럼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함라교당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은 삶의 공간을 식민화시키는 이러한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맞서는 사회의 자기방어운동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역주민들이 마을에서 아이들의 삶에 모범으로 보이고 사회활동을 유지해내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을 지역공동체가 함께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생기를 잃고 시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와 격리되어 공장처럼 생각을 찍어내는 교육은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이웃과 의사소통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를 가로막는다. 일부에서 차별화된 교육시스템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수업방식을 다변화시킨다 해도 존중과 배려의 자세를 배우지 못하면 중요한 사회적 자본을 잃고 결국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원불교 '사요(四要)'의 '타자녀 교육'은 저성장사회에서 이웃과 이익과 불편을 모두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성찰적 근대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 이런 정신이 실현될 수 있으려면 배움과 성장의 공간이 학교라는 울타리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지역의 자연과 문화유산 등을 모두 훌륭한 교육자원으로 삼고,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마을교육공동체'라는 개념이 확산되어야 한다.

함라에는 황등·함열·성당·웅포·함라를 관장하던 함열현이 있던 고장이다. 교육기관인 향교가 있고 허균이 귀양살이를 하던 곳이며 삼부자(만석군 세집)가 살던 가옥이 있다. 또한 함라의 토석담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고 고려말 3대첩의 하나인 진포대첩지가 근처에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따라서 함라이야기방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함라는 삼부자집에서 잔치가 자주 열렸고 잔치가 열리면 부자집에 모여 보름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동네 요리사들의 경연장이 됐으며 함라의 음식문화가 형성되었다. 

청국장을 비롯하여 마늘전 식혜 반지김치 신선로 약과 정과 등의 전통음식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게다가 함라는 농촌으로 많은 논과 밭이 있다.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해 고구마캐기, 감자캐기, 옥수수따기 등을 할 수 있다. 또 함라교당은 삼부자중의 하나인 이배원가옥의 사랑채가 있는데, 전통 한옥의 마당에서 민속놀이나 전통차 마시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교당은 잔디가 깔려있는 넓은 마당이 있어 있고 마당음악회를 열기에 적당하다. 삼부자들은 예술인들을 식객으로 두어 소리를 듣고 그림을 받아 벽에 붙이는 문화가 있었다. 전문 소리꾼을 초빙하여 음악을 감상하고 초등부 판소리 대회를 유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며 요가교실, 풍물교실, 서예교실 등의 운영도 가능하리라 본다.

/함라교당

[2019년 9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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