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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22, 사생의 자비부모 대각여래위
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22, 사생의 자비부모 대각여래위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9.09.27
  • 호수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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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각자(覺者, Buddha)는 눈뜬 사람,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삶의 의미와 우주의 진리를 꿰뚫은 사람이다. 이들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중생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파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혜원스님은 "자신 스스로 깨닫고, 또한 능히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사람"(〈대승의장(大乘義章)〉)이라고 정의 내린다. 때문에 이들 대각을 한 사람들은 불일(佛日, 해와 같은 부처의 지혜 또는 그것이 생생약동하는 세계)이 어두워지면, 다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진리의 사명을 띤 사자(使者)다.

깨달은 자의 능력을 석존시대에는 3명6통으로 정리했다. 전자는 천안명(미래를 아는 지혜), 숙명명(전생을 아는 지혜), 누진명(번뇌를 멸하고 생사를 벗어나 열반을 증득하는 지혜)을 말한다. 후자는 여기에 신족통(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능력), 천이통(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 타심통(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을 더한 것이다. 무한능력이다. 자신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지혜와 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대각여래위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모든 능력을 갖춘 성자다. 대산종사는 "여래를 대각하고 심신을 자유하여 대자대비로 만능(萬能) 만지(萬智) 만덕(萬德)을 갖춘 경지"라고 한다. 자신의 불성을 완전히 드러낸 동정일여의 대정(大定) 속에 심신의 자유를 이루어 마침내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비부모"가 된 것이다. 그는 제도를 위한 천만 방편을 갖추었다. 육도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모든 중생의 아픔과 눈물을 씻어 내린다. 시기상응(時機相應), 즉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교화 받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방편을 펼친다. 그의 자비로운 원음(圓音)은 시방삼계로 퍼져나간다. 

그의 권좌는 법신불과 일체가 된 자리다. 그의 교화력에 가는 곳마다 인천대중이 환영하고, 만물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다. 꽃은 절로 피어 향기를 발하고, 거친 바람은 절로 잦아들며, 포효하는 풍랑은 가라앉아 고요히 그가 가는 길을 열어준다. 그에게 감화를 받기 위해 세상 곳곳에서 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는 마침내 우주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는 우주와 일체가 되었다. 그의 품은 우주이며, 그의 발길이 닿는 곳은 그의 영토다. 〈법화경〉에서 설하듯이, 우주는 그의 소유이며, 그 안의 모든 생령은 그의 자식이 되었다. 

그의 품이 우주로 화하였기 때문에 중생들은 그의 교화방편을 알지 못한다. 즉 자비의 비가 내려도 누구의 소유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중생들이 거처할 불국토를 건설한다. 그의 품속에서 중생은 자유와 평화와 지복을 누린다. 그는 복혜가 무궁무진한 무애자재의 대각도인이자 무념·무주·무상의 대봉공인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중화·중도·중용을 드러낸다. 제도를 위해 은현자재하며, 살활자재한다. 화광동진하고, 화이불류하며, 사자후의 한 소리에 모든 중생이 잠에서 깨어나 광활한 심령의 대지를 발견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은 우리의 불성을 찾아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일원상의 진리를 굴리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표본은 대각여래위이며, 그들 성자들의 출현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가장 큰 축복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인류 모두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표다.

/원광대학교

[2019년 9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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