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채일연 교도] 17일 경기도 파주 소재 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데 이어 18일에는 경기도 연천 소재 농장 역시 ASF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농장들은 16일과 17일 돼지 폐사 신고를 했고, 정밀검사를 통해 17일과 18일 ASF 양성이 확정됐다. ASF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100여 년 만에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ASF는 치사율이 100%에 달할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면서도 현재까지 백신이 없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ASF가 처음 발생한 이후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데 35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이에 방역당국은 ASF관련 가축질병 위기단계를 심각단계로 격상하고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질병의 특성상 한 번 퍼져나가면 걷잡을 수 없기에 적극적인 방역대책이 세워지고 시행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대책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인도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책임을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돌리거나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는 했다. 

2016~2017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당시 정부는 차단방역 보다는 가금류를 죽여서 확산을 막겠다며 '예방적 살처분'에 집중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가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AI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불과 수개월 만에 3천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 당해야만 했다. 

2014~2016 구제역 사태에서도 정부의 대응 방식은 큰 차이가 없었으며, 당시에도 2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ASF 사태에서도 정부가 이러한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엄습해오는 이유다. 실제로 파주 농장의 확진과 동시에 원인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멧돼지의 개체수 조절을 언급하는 등 설익은 대책들이 난무한다. 안타깝게도 ASF는 질병의 특성으로 인해 살처분을 피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살처분이 우선 죽이고 보자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범위와 대상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AI 사태에서도 많은 동물들이 질병을 막는다는 구실로 죽임을 당했지만 정작 전염은 동물보다 차량과 장비, 사람에 의한 전파가 더 큰 원인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불가피하게 살처분을 시행할 때에도 그 방법은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최대한 인도적이어야 한다. 

아프리카대지열병 긴급행동지침에는 살처분 요령에 동물보호법 제10조에 따라 전살법, 타격법 등 동물의 즉각적인 의식소실을 유도하고 의식이 소실된 상태에서 절명이 이루어져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물을 일시에 처리하는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실제 구제역과 AI로 인해 살처분을 진행할 당시 곳곳에서 동물들을 산채로 매장하거나 중장비로 돼지들을 가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살처분이 동물들에게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 역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호소하고는 한다.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2017) 결과에 따르면, 살처분 집행에 동원되었던 전국 공무원 등 268명중 76%가 △기억의 회피 △부정적 감정 상태 △분노 폭발 △수면 장애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 증상을 보였다. 우울 점수도 평균 14.99점(경우울증 10~15점)으로 높았는데, 23.1%는 중우울증(24~63점)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 17일 파주의 살처분 현장만 하더라도 가스법(이산화탄소 등) 시행시 △적당한 크기의 구덩이를 설치 △동물이 구덩이 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돼지 20도, 소.염소 30도) 설치 △구덩이 상단부에 비닐을 덮고 흙을 이용하여 밀봉 후 이산화탄소 가스 주입 △의식을 회복하였거나 의식회복이 의심되는 개체에 대한 약물 등 보조방법을 이용한 죽음 유도 등 긴급행동지침(SOP) 중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ASF가 국내에서 발생한 이상 얼마나 더 확산이 되고 오래 지속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른 동물들의 희생이 얼마나 이어질지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에 따라 피해 규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인도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의도교당

[2019년 9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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