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희 지음
책공장더불어·13,000원

[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첫 발생으로 정부가 대대적인 방역 작업을 벌이는 가운데, 살처분된 돼지가 22일 기준 1만5천마리가 넘어선 것으로 보도됐다. 〈묻다〉는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의 앞부분 2312, 11800, 15000, 73000, 84879 등 수수께끼 같은 숫자들이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24장의 사진을 넘기고 나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이 사진들은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제목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수입니다.'

2010년 겨울 책의 저자인 문선희 사진작가는 살처분 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2010년 발생한 구제역으로 무려 347만 9,962마리가 살처분 됐고, 2010년 12월29일 발생한 조류독감으로 2011년 5월16일까지 총 648만 마리의 가금류가 속절없이 땅에 파묻혔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3년 전국 4,799곳의 매몰지가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자는 '정말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매몰지를 찾게 된다. 땅은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어느 곳은 물컹했고, 어느 곳은 곰팡이가 피었다. 

저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1,000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생매장된 4,799곳 중 100군데를 2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찾아 다녔다. 가축전염예방법에서 사체를 묻은 토지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3년에 한정돼 있을 뿐, 그 이후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은 살처분 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 저자가 살처분 매몰지를 추적하며 기록한 경험을 사진과 함께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동물들을 처참하게 묻는 행위를 가리키는 책 제목 '묻다'는, 살처분과 대량 사육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뜻하기도 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참고 기다리는 동안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죽어간다. 모두의 가치와 철학이 모여 제도가 된다고 믿는다. 마음이 모여 여론이 되어주길 바란다."

[2019년 9월2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