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이 도를 넘고 있다. '사람의 투쟁이 처음에는 사상전에서 시작하여 다음에는 세력전으로 옮기고 다음에는 증오전에 옮겨서 필경은 무의미한 투쟁으로써 공연히 대중에게 해독을 끼치기 쉽나니라'는 정산 종사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은혜의 종교 원불교는 모든 존재에 감사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상생의 삶을 지향한다. 은혜와 개벽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시국을 이끌어가는 정치인들과 검찰을 비롯한 권력 주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정파와 집단의 이익에 빠져 상극의 정치로 내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님들은 개벽 시대를 이렇게 설명했다. '양 세계는 곧 대낮과 같아서 인지가 고루 진화하고, 주의 주장이 밝고 원만해지며, 문호가 서로 열리게 되고, 서로 만나 넘나들며 활동하는 세상이라, 이른바 대문명 세계니라.', '선천과 후천을 여러 방면으로 구분하여 보자면 이러하다. … 정치라면 군국주의, 전제주의와 합의주의(合議主義), 민주주의이며, 처세라면 권모술수와 언행구비요, 사물이라면 분리와 합치이며, 기운이라면 하향과 상향이요….' 요컨대, 개벽 시대란 인지가 발달하여 두루 소통하고 교류하는 때이고, 진실이 드러나 인과응보가 신속하게 이뤄지고 진정한 자유와 평등으로 나아가는 때이다. 인류가 겪어 보지 못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다. 그 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뭔가 감추려는 자는 끝내 감추지 못할 것이다. 권위주의적 권력구조는 상향적 민주적 질서에 자리를 비켜 줄 것이다.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정치 조직은 국민의 지지를 잃을 것이다. 개방적 태도로 상대를 존중하고 소통에 힘써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 세력이 지지를 받을 것이다. 검찰 같은 국가 권력 기관도 마찬가지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선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시대에 발맞춰 적정한 권한 배분과 민주적 상호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의 적정한 분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설치 등의 쟁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어떤 조직도 과도한 권한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권한이 커지면 그에 비례하여 책임과 함께 비난의 정도도 커지게 마련이다. 감당하기 버거운 짐은 내려놓는 것이 좋다. 현시국은 검찰이 칼잡이란 꼬리표를 떼고 국가 권력의 대행자로서 주권자인 국민의 공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무서운 검찰이 아니라 고마운 검찰로 거듭날 때이다. 

사회의 진보는 제도와 법률의 변화를 전제한다.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잡으려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을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천(先天)에는 악한 자도 잘 살았으나 후천에는 거짓되고 악한 자는 보증하고 잘못 사는 것을 삼십년 안에 볼 것이니 이것이 정법 시대 출현의 증거이다.' 소태산 스승님의 말씀이다. 정신을 개벽하는 자들만이 후천 개벽 시대를 잘 살아낼 수 있다.

[2019년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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