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헌 기자

바둑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허술한 작은 집은 다양한 아다리 변수가 많아 방심하다가는 상대방에게 먹혀버리는 일이 발생하지만, 촘촘히 많은 돌들로 이뤄진 큰 집은 안팎으로 그보다 훨씬 많은 돌들이 포위하지 않는 이상 죽을 일이 없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으로는 죽지 않음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대마필사(大馬必死)'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바둑판에서도 '절대'라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탄탄하게 지은 줄 알았던 큰 집도 미련하게 죽을 길만 정확히 골라서 밟아가면 아무리 대마라도 두 집을 못내고 절명하고 만다. 여기에는 대개 '자충수(自充手)' 탓이 크다. 바둑에서 집이란 자신의 돌이 둘러싼 빈 공간을 말하는데, 이 공간을 '스스로 채워넣는 수'를 두고 있으니 제 아무리 대마불사라도 대마필사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서 영원할 것 같았던 대기업들의 몰락한 과정이 그렇다. 1881년 조지 이스트만에 설립된 코닥(Kodak)은 당시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웠던 사진 기술을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세계에 필름 이미지 산업을 부흥시킨 장본인이다. 세계시장의 70% 석권, 전세계 15만 명의 종업원, 코카콜라·맥도날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던 3대 브랜드, 130년 넘는 역사 등 웬만한 기업은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울만큼 찬란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코닥사는 1990년 디지털 카메라 등장으로 급속도로 경쟁력을 잃고 2012년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전설의 시대를 마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초 디지털 카메라 개발은 다름아닌 코닥사 자신이었다. 1975년 코닥 연구원 스티브 세슨이 발명했지만 필름이 필요없는 카메라 시장이 열린다는 게 코닥사 자신들에게는 두려웠던 모양이다. 코닥이 존속기술과 현재이익에 집착한 기득권의 함정, 즉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에 빠져 기회를 외면하고 감춰버린 댓가는 몰락이었다.

시장의 변화를 무시하고 그동안 자신들이 성공해온 과정이나 경영 방식을 그대로 또는 열심히 답습하려는 성향을 의미하는 활동적 타성의 사례는 코닥 뿐만이 아니다. 일본 8대 전자회사였던 샤프(SHARP)는 일본 내수시장과 수직계열화를 고집하다가 글로벌경쟁과 저성장시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6년 대만 폭스콘에 인수됐고, 1980년대 도시바(TOSHIBA)는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Nand Flash Memory)를 개발했음에도 당시 수익성 높은 컴퓨터 메모리 사업에만 몰두하다가 삼성과 인텔에 세계 시장을 내주고 지금은 간신히 버티고 있다.

활동성 타성은 대마불사할 기회가 역력했음에도 기회를 놓쳐버린 몰락한 기업들의 공통된 자충수다. 원불교 2세기, 교단을 활동적 타성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2019년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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