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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23. 부처님과 법신불
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23. 부처님과 법신불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9.10.04
  • 호수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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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교가는 "영산회상 봄소식이 다시와 만생령의 자부이신 대종사"로, 학생회가는 "부처님 이 회상에 모인 우리는"으로 시작한다. 산회가는 "늘 도우시는 부처님 위에 계시사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후렴으로 끝난다. 원불교는 인도에서 성불하신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을 이 시대에 구현한 것이다. 그 회상과 이 회상은 둘이 아니며, 석가모니불과 대종사님은 두 마음이 아니다. 대산종사는 "두 분이 아니시다"라고 단호하게 설파한다.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심고를 올릴 때 '법신불 사은님!'이라고 부른다. 법신불의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는 '다르마 카야 부다(Dharma-kaya-buddha)'다. 즉 법과 신과 불이 결합된 것이다. 법신불은 궁극적 진리 또는 모든 부처의 근원이 되는 부처님을 뜻한다. 그러니 법신불은 그냥 '부처님'으로 불러도 된다. 그 부처님이 어떠한 부처님인가 라고 묻는다면,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자 일체 중생의 본성에 깃든 부처님'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석가모니불에 연원을 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법이 무상대도라는 점이다. 불타의 깨달음을 〈반야심경〉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즉 무상정등정각, 줄여서 정등각(正等覺)이라 하며, 부처의 근거인 지혜의 깨달음을 말한다. 이 위에 더 없는 뛰어난 원만평등한 법을 말한다. 소태산 대종사 또한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갔기에 석가모니불을 연원불로 삼은 것이다.

연원은 인맥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최상의 지혜를 같은 근원으로 삼은 불보살 가문에 합류한 것을 말한다. 누구에게도 증명받을 수 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유일한 석가모니불을 통해 확증한 것이다. 이제 원불교는 불법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회상, 석가모니불과 심신상련하는 영산회상을 펼치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의 역사·문화·사상은 원불교에 그대로 계승됐다. 나아가 세계 모든 종교의 가르침 또한 최고최상의 지혜를 기축으로 포용하게 됐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것은 우리 삶을 온통 의탁하며, 늘 소리높여 부르는 부처라는 호칭 또한 그대로 받들게 된 것이다. 최초의 부처는 2천5백년 전 역사상 유일한 석가모니불이다. 그의 열반 후, 수 백년이 흐른 뒤에는 사방에 네 부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밀교에서는 대일여래(=법신불)를 중심으로 서방의 아미타여래를 비롯한 네 부처가 위호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다불(多佛)사상은 물론 부처라고 하는 존재의 지혜와 덕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 자신 또한 깨달으면 이러한 다양한 지혜와 덕을 구비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흘러 이제는 누구나 품고 있는 불성(=여래장)을 드러내면 실제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보편불 사상이 정착하게 됐다.

질문해 보자. 수없이 존재하는 부처를 부처이게끔 하는 부처는 어떤 부처인가. 법신불이다. 중생구제를 위해 석가모니불이나 소태산 대종사를 사바세계에 보낸 부처,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 불성을 심어준 그 부처는 법신불이다. 그 분을 부처님이라고 부르되 그 분의 원래 이름은 법신불이다.

그러니 애써 다른 호칭을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 이후 면면이 흐르는 원불교의 가풍임을 재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원광대학교

[2019년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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