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준 교무

[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어느 유명 방송인이 담화하던 중에 요즘 인터넷의 댓글들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과거에는 팬레터나 선물을 받고,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찾고 하다 보니 늘 사랑받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다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을 잘못 믿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기피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방송인이 워낙 능글맞고 유명하기에 그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대중의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에서는 700명, 중학교에서는 500명에 다다르는 인원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앞에서는 좋다고 돌아간 아이가 뒷이야기로 안 좋은 소리를 하거나, 마음에 안 든다고 욕하는 이야기가 돌아 돌아 결국 내 귀까지 들려온다. 그럴 때면 참 기운이 빠진다.

학교에서는 그 많은 인원에게 나의 진심을 전달하기도 어렵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결국 같은 공간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이 참 어렵고, 이 아이들은 또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옥죄어오는 것 같다.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원창학원이라는 교화의 텃밭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다양한 자책이 몰려올 때면  법문 하나를 마음에 새긴다.

대종사는 "세상 만사가 다 뜻대로 만족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천만 년의 영화를 누리려는 사람같이 어리석나니,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십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낀다" (〈대종경〉 인도품 29장)고 법문했다. 어찌 세상 일이 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될까? 아무리 돈이 많은 빌 게이츠라고 해도 삶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사랑받는 연예인이라도 악성 댓글은 있다. 심지어 성자였던 석가모니도 욕을 먹었고 예수는 죽었다. 하물며 나 같은 범부가 하는 일이랴.

순금은 순도 99.9%의 금을 일컫는 말이다. 왜 순금이 100%가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금은 자연상태에서는 어떻게든 불순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머지 99.9%가 금이기에 순금이라 부른다. 100%가 될 수 없는 것이 자연이라면, 이 자연 속에서 나도 당연히 100%를 채울 수 없지 않은가. 나의 삶도 십분의 육만 맞으면, 아니 십분의 일이라도 감사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은혜가 아닐까?

요즘 아이들은 글자 유희를 종종 한다. 예를 들어 '멍멍이'를 '댕댕이'라고 표현하거나, '명작'을 '띵작'이라고 표현해서 비슷하게 보이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표현에 익숙해져서 그럴까? 어느샌가 댓글이라는 글자가 '멋글'로 보인다. 인터넷 댓글을 읽다 보면 진짜 멋지고 센스있는 멋글들이 있어 보는 맛이 있듯,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감사할 것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은혜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악플 속 멋글들을 찾아내듯, 삶 속에서 감사할 요소들을 찾아본다.

[2019년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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