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하얀 종이나 캔버스에 선 몇 개를 그으면서 그림을 시작한다. 그 선들의 쓰임새에 문외한들은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화가의 손길이 더해질수록 화가의 의도는 구체화 돼 그림으로 나타난다. 완성된 그림에선 처음에 그은 큰 선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들이 없었다면 작품도 탄생하지 못했을 터. 교단 4대의 큰 그림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다.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한 중심선이나 윤곽선처럼 교단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꼭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무엇일까. 각자의 생각이 있겠지만 다음의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이다. 정보를 교환, 저장, 처리, 관리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으며 갈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정보혁명시대, 정보사회의 경쟁력은 정보의 내용 즉, 창의적 콘텐츠에 있다. 우리 교단의 핵심 콘텐츠인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은 무한한 활용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훌륭한 콘텐츠를 어떻게 교화활동과 교단운영, 나아가 시급한 사회문제와 새로운 문명 창조에 활용할 것인지 깊이 살펴볼 일이다. 특히 최고수준의 정보통신 강국인 우리나라의 강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음은 큰 기회이다. 우리의 게으름으로 큰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둘째, 남북통일이다. 남북통일은 상상 이상의 민족 융성을 가져올 것이고 우리 삶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민족이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행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통일 논의는 정파적 시각을 뛰어 넘어 민족공동체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냉전이데올로기와 체제를 종식시키려면 과거의 무거운 업보를 녹여내야 한다. 부질없는 분별과 분단을 넘어서 대동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지혜를 모으자. 한고비를 넘으면 국운융창의 기회가 온다. 한반도에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주의사상을 선양하여 통일된 조국이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될 수 있도록 바쁘게 준비하고 보은하자.

셋째, 인구절벽과 고령화이다. 교단과 사회가 직면한 큰 경계이다. 고령사회의 도래와 그에 따른 사회의 재구조화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에 가까운 상황이다. 누구는 '정해진 미래'라고 한다. 교당은 물론이고 모든 기관들이 중장기계획을 세울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고객, 이용자, 수혜자가 사라지는 시대에 교단의 생존전략은 분명히 과거와 달라야 한다.

사은 신앙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환경의존적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적, 사회적 환경에 민감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의 습관이나 구태를 답습해서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마음의 자유를 얻은 자들만이 과거를 내려놓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교단 미래 설계라는 큰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먼저 그릴 것인지 심사숙고할 때이다.

[2019년 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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