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교무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6세기에 건립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대석불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올 정도로 당시 성지순례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다. 탈레반이 2001년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파괴하여 세계의 비난이 쇄도했다. 오늘날 중국에는 문화혁명 이후 파괴됐던 불상이나 사원을 복원하는 일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크기를 자랑하듯 세계 최대의 불상이라는 말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의 정치문화적 효용성을 제외한다면, 자신의 왜소함을 극복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 또는 불보살 성현들에게 의탁하고자 하는 인간의 신앙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종교마다 신앙의 해석은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자손임을 잊고 살다가 이를 깨닫고 그와의 관계를 회복해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힌두교는 신애(信愛)를 신에 도달하는 최고의 길로 여긴다. 신을 숭배하는 열정에서 폭발하는 사모의 감정이다. 불교 또한 교파나 종파마다 뜻이 다소 다르나 신앙, 신(믿음), 신심 등을 사용한다. 신앙은 불법승 삼보를 대하는 마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대상이다. 신과 신심은 의심없이 수행정진하는 마음으로 깨달음의 기반이다. 이 외에도 신해(信解)는 지혜에 의해 이해의 지평이 넓어져 진리에 확고한 믿음이 확립되는 것이다. 신요(信樂)는 정토계에서 아미타여래의 본원을 믿고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기쁨을 말하기도 한다.

불공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뜻한다. 정신(淨信)을 상징하는 꽃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물이 동원됐다. 부처님 열반 후 불상의 출현과 함께 이러한 관습은 민간신앙과 합쳐져 더욱 확대됐다. 기복, 미신불교는 이러한 불공이 자기중심적으로 변질된 현상을 말한다. 원불교의 불공법은 타자중심의 불공이다. 즉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불성'을 향한 직접적인 불공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모든 존재 각자의 완전성 또는 부처로서의 현존적 가치가 최대한 발현되도록 하는 타자를 향한 최고의 예의다. 이를 통해 자신이 부처임을 더욱 깊이 자각하게 된다. 우리 불성은 법신불에 근원하고 있으며, 법신불은 세계 모든 존재의 참된 후견자다. 따라서 상대방의 불성이 부처로서 드러나도록 '모시는 마음'은 곧 자신의 불성을 향한 최고의 접대가 된다.

사물에 대한 불공도 마찬가지다. 물을 마시는 컵에 대한 불공은 그 컵의 완전성을 우리가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에 있다. '컵의 완전성'이란 컵의 본성을 말한다. '컵의 본성'은 컵이 컵으로서의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최근 비상상황에 처한 지구환경문제의 해법도 지구에 대한 불공에 달려 있다. 지구는 하나의 완전체이며 모든 존재의 어머니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의 고향이다. 그런데 지구가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뒤틀리고 있다. 지구에 불공하는 길은 지구의 자연성을 회복토록 하는 것이다. 지구 스스로 자신을 보존하고 정화하며 치유하는 기능을 되살려 주어야 한다. 인간이 지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인간을 품에 안고 보살피는 '본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이다.

불공은 결국 진리에 대한 신앙을 진리의 화현인 존재에게 환원하는 방식이다. 모든 존재의 가치를 존중하며 진리의 뜻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원광대학교

[2019년 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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