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빙산일각(氷山一角)"이라는 말이 있다. 즉 '빙산의 뿔'이라는 뜻으로,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대부분 숨겨져 있고 외부로 나타난 얼음덩어리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드러난 면은 일각에 지나지 않고 숨겨져 있는 면은 대단히 크고 넓고 무겁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현상이나 본체, 또는 하늘땅이나 우주, 나타남과 숨음 등을 놓고 볼지라도 감지(感知)할 수 있는 대상은 한계가 있지만 감지를 할 수 없는 대상은 무한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니 곧 '유(有)'의 나타나고 드러난 면과 '무(無)'의 숨겨지고 감추어진 면의 차이는 상상으로 이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유무'의 개념은 나뉜 것 같지만 이면에는 상련(相連)하고 상통(相通)하여 둘이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철학의 범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유(有)는 사물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형(有形), 유명(有名), 실유(實有) 등의 뜻이 있고, 반면에 무(無)는 사물의 부존재(不存在)로서 무형(無形), 무명(無名), 허무(虛無) 등의 뜻이 있다. 노자는 〈도덕경〉 2장에 "천하가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악한 것이 있기 때문이요, 모두 선한 것을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가 낳는 것이요, 어려움과 쉬운 것은 서로 이루는 것이라(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즉 유무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볼 때 추악함이 있음으로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되고, 악함이 있음으로 선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상통융화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추악함은 이미 아름다움과 융회(融會)되고, 선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악은 융회가 되어 진다. 이와 같이 유무(有無)나 난이(難易)도 마찬가지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유란 상견으로 내가 있고 법이 있다는 사견에 집착하는 것이요, 무란 단견으로 나도 없고 법도 없다는 사견에 집착하는 것이니 곧 반대의 편견이다.(有者常見 執有我有法之邪見也, 無者斷見 執無我無法之邪見也. 卽反對之偏見也)'고 했다.

〈정전〉에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며,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라 했다. 특히 대는 우주만유의 본체이고, 소는 형형색색의 차별현상이며, 유무는 우주의 조화ㆍ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주야의 변화, 인간만물의 생로병사, 춘하추동의 변화, 풍운우로상설의 변화, 역사의 흥망성쇠 등을 말한다.

송(頌)하기를
본래원리멸(本來圓理滅)  본래 둥근 진리란 없는 것이요
진체유무망(眞體有無亡)  참 바탕은 있고 없음도 없어라
득불상심각(得佛常心覺)  부처는 평상 마음 깨침에 얻으리니
용하착우량(用何斲愚良)  어리석고 어짊을 쪼개 어디 쓰리요.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19년 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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