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개벽, 과정·주체·나아갈 미래 달라
지구와 온 생명의 살림을 위한 개벽은 지금부터

송기찬 교도

[원불교신문=송기찬 교도] 스무 살 이후 내 삶은 자본주의와 서구적 근대의(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했던 노력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사회적 경제로, 공동체로 그리고 지역운동이나 청년혁신활동으로 그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런 활동 속에서 중심을 잡고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뿌리와 비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사상 그리고 그 최신 버전인 원불교로 찾아왔다. 

그런데 막상 원불교에 와보니 내가 극복하고자 했던 서구적 근대와 겉모습이 너무나 비슷했다. '원불교가 만든 근대는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정'이 달랐고, '주체'가 달랐으며, 나아갈 '미래'가 다를 것이다. 최근 익산에 있는 문화예술의 거리에 갔었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영정통이라 불리며 번화했던 곳이다. 그곳은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으며 주된 테마는 근대문화였다. 그곳에서 근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곳의 '근대문화'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의상, 분위기였다. 그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문화이기도 했지만 사실 서구의 근대문화를 장착한 일본의 문화였다. 그런데 그런 서구적 근대 문화의 받아들임 즉 '개화(開化)'만이 우리의 근대는 아니었다. 조성환 박사가 <한국 근대의 탄생>에서 문제 제기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개벽(開闢)적 근대가 있었다. 근대에도 개화와 척사(斥邪)를 넘어선 다양성이 필요하다. 필요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그중에서도 선두는 동학에서 원불교로 이어져 온 이 땅의 사상과 문화인 '개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벽적 근대는 서구적 근대 즉 개화의 근대와 겉모습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주체'와 '과정'이 달랐고 '미래'에 대한 방향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구적 근대의 '주체'는 일본,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거대 자본들이었다. 그 '방법'도 문명(文明)이라는 미명아래 전쟁과 폭력, 억압과 착취의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아가는 방향도 우리가 지금 현대사회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소외와 환경파괴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개벽적 근대는 어땠을까. '주체'는 민중, 그중에서도 힘없고 가난한 보통의 사람들이 하늘님, 부처님으로 깨어나 동학과 원불교를 만들고 생명운동, 평화운동으로 역사의 주체가 되었다. 그 '방법'은 동학농민 혁명에서 보듯이 영성적(수양)이며 비폭력, 평화를 지향했다. 원불교에서도 모두를 은혜로 보는 은혜 사상을 바탕으로 상생적이며, 자력적인 방법으로 저축조합(협동조합)을 시작하였고 법인성사(영성운동), 방언공사, 숯장사 등으로 기반을 마련하고 성장해갔다. 또한 교육, 복지, 의료 등 공공적인 사업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으며 보편적이고 서구적 근대 문명의 좋은 면도 획득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중심이 아닌 지역에서부터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이제 '미래'는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구적 근대에 적응할 때를 넘어, 극복해야 할 때, 다시 개벽 할 때가 온 것이다. 120년 전의 개벽을 다시 개벽해야 한다. 과거 계급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개벽에서 지구와 온 생명의 살림을 위한 개벽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계급이나 민족의 해방을 넘어 전 지구적(기후위기)인 살림이 필요하고 그 대상도 인간을 넘어 자연과 물건(AI,로봇)의 차원까지 커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벽적 근대의 미래가 서구적 근대와 같다면 그것은 서구적 근대에 적응만 하고 극복은 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서구적 근대에 물들어 자기 색깔을 잃고, 다시 한번 식민 지배를 당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개벽적 근대의 완성은 지금부터이다. 개벽은 끝나지 않았고 이제부터, 우리로부터 다시 시작이다. 

/원불교사상연구원

[2019년 10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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