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교무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전〉은 인간을 부처로, 세계를 불국토로 만드는 매뉴얼이다. 인류의 출현 이래 이러한 기획은 처음이지 않을까. 물론 이웃종교들도 성현을 만드는 매뉴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전〉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사회와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제거하고, 병든 문명을 고치기 위한 구체적 처방전을 던진 예는 찾기가 어렵다. 〈정전〉이 인류의 교과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정전〉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불법으로 심정토·심낙원을 건설하자는 선언이다. 불법의 우수한 점은 마음을 통찰하는 것에 있다.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자신과 이웃과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은 예가 한둘인가.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처럼 모든 것에는 선후·주종·본말이 있다. 마음이 드러난 것이 삶이다. 성자 간디는 한 마음이 나오는 것을 늘 경계했다. 마음이 어떻게 발아되는가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삶의 근본은 마음 다스리는 일이다. 불행과 행복, 구속과 자유, 죄와 복의 선택은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공부의 요람은 불법이다. 사회개벽에 앞서 마음개벽이 일어나야 한다. 

둘째는 존재의 기쁨이다. 우리는 법신불의 무량한 은혜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으며, 그 환희를 만끽할 수 있다. 설사 가진 것 없는 나의 현존재가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나는 법신불의 화현으로서 '천상천하유아독존'한다. 석가모니불의 그 선언은 소태산 대종사에 의해 계승됐다. 이러한 우리를 감싸주고 보호하며 인도하는 법신불의 대은혜가 우주 곳곳에 넘쳐흐르고 있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독감에 빠져 자기중심의 세계를 만든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법신불의 무한한 자비광명의 은택 속에 있음을, 그리하여 존재 자체만으로도 무량한 열락(悅樂)에 들 수 있다. 

마지막 셋째는 분열된 세계를 일원상의 진리에 기반, 화합으로 이끄는 사명이다. 목표는 정의와 평화다. 신앙과 수행의 궁극은 여기에 있다. 정의와 평화가 구현된 세계가 바로 정토낙원이다. 성불제중·제생의세는 약육강식의 이 세계를 균형과 조화, 중도와 중용의 삶으로 가꾸어 나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인류는 중흥이냐 멸망이냐의 기로에 서있다. 발밑의 현실을 보라. 하나뿐인 지구가 얼마나 갈가리 찢겨져 나가고 있는지를. 〈정전〉을 등에 업고 사회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지구를 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간의 무의미한 분별망상을 제거하고, 하나로 뭉쳐 이 지구를 정의와 평화의 낙원으로 리셋할 수 있도록 우리들이 앞장서야 한다. 

'현대문명과 정전'의 태반은 성지인 성주 소성리에서 썼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갔다. 전쟁무기 사드의 반입으로 평화를 잃은 주민들의 고통에 눈물 흘리며 절치부심했다. 인류의 무명과 고통이 집약된 소성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번민하면서 이 글을 썼다.

결론으로 일원상의 진리와 삼동윤리, 그리고 사무여한의 정신을 몸소 보여준 주산종사의 제중(濟衆)의 삶을 끊임없이 이 지상에 재현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지난 3년 동안 함께, 당연한 이 진리와 역사를 다시금 증명한 독자제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이제 펜을 놓고자 한다.

/원광대학교

[2019년 10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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