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너머의 새로운 공동체
대안 위해 머리 맞대야

[원불교신문=이성하 교무] 내가 속한 출가 교화단의 한 교무님이 ‘미국인들의 특성이 선방에도 열심히 나오고 법문도 잘 듣다가도 교전을 주고 한걸음 깊이 인도하려고 하면 바로 교당으로부터 멀어지니 이런 특성을 이해해야만 현지인 교화에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인만의 특성이 아닌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곳의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대개 그러한 것 같다. 

일단 물리적으로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 특히 종교 조직같은 신념 체계에 동의를 하고 나아가 규칙적으로 참여하는 구성원이 된다는 것에 경계심이 크다. 이들은 전통적 방식의 공동체에 속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이 접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마땅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공동체의 가치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따져 보아서 참여할 것인지를 자발적으로 결정하며 나아가 그와 같은 공동체 참여에 관한 이해관계와 가치 판단을 따져보는 일은 공동체에 참여한 후로도 계속하는 편이다.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공동체와 관련해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2017년 선언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사회 정치적 격변은 상당 부분 인간 공동체의 해체에서 비롯했고, 저커버그에 따르면 지난 수 십년간 모든 종류의 집단에 속한 회원 수가 1/4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어딘가에서 목적 의식과 지지받는 느낌을 찾고 싶어하고 있고 그런 공동체 건설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도구를 페이스북이 내놓겠으며 앞으로 10억 명의 인구가 의미 있는 공동체에 가입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저커버그가 말하는 해체된 공동체는 전통적 공동체들이며 SNS 같은 사회 관계망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세상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인터넷 공동체들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저커버그가 만들고자 한다는 그 의미 있는 공동체 프로젝트 역시 인터넷 안에서 만들어지는 가상의 공동체가 될 것 같다. 

공동체의 해체는 이미 20세기부터 예견되어 온 이야기라 새삼 무슨 공동체냐 하겠으나 세상의 격변에서 개인의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들이 공동체의 해체로부터 기인한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으면서 인간적 유대가 살아있는 건강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절실해지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며 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인터넷 속에서 개인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가상 공동체가 점점 세분화 되며 확장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게 전통적인 공동체로의 회귀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좀 더 사람들의 욕구에 더 깊이 반응하고 열린 가상의 공동체가 계속적으로 생겨날 것 같다.

물리적 공동체는 해체되고 가상의 공동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변화의 환경 속에서 법회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방식의 우리 공동체에도 고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예컨대 처한 사회적 여건이 법회 참석이나 교당 활동을 할 수 없는 청소년 교화를 법회 중심으로 설계한다든지 청소년·청년을 담당할 예비 교무들의 교육 또한 교당 법회 중심의 교화 활동으로 설계하는 것은 미래 교화를 생각할 때 재고할 일이다. 교당에서 이루어지는 법회가 곧 교당 공동체의 기초이기는 하지만, 법회와 교도가 없는, 교당 없는 교당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 교화는 한동안 봄소식 없이 지낼 수밖에 없다. ‘입교’ 하지 않아도 원불교라는 제도 속에 들지 않아도, 언제든 원불교라는 의미있는 공동체에 접속할 수 있는 교당 너머의 새로운 공동체라는 대안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교당

[2019년 1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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