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첫물에 곱던 볼이 지친 듯 노랗구나/담벼락 저쪽으로 옷 스치어 오실는지/고누어 듣고 들어도 기척 없는 님이여’ 신림교당 송경은 교도가 창작시조 ‘능소화’로 <시조생활> 신인문학상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능소화를 의인화하여 그리운 마음을 곡진히 풀어낸 그의 작품은 맑고 정돈된 정신 세계에 시조의 현대적 감각을 운치있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송도성 종사의 사남인 그는 송순봉 종사 생전에 시조를 지어 올릴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다. 그는 “올해초 조정제 원문협 고문을 만나 교제해오다가 문단에 정식 등단할 것을 권유받았다”며 “그저 시조를 즐겨했을 뿐 아무 바람없이 살아왔지만 거듭되는 추천에 지어보낸 시조를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능소화’처럼 연륜의 무게와 깊은 통찰력이 엿보이는 ‘풍경’, ‘호수’, ‘정’, ‘대’ 등 여러 창작 시조를 제출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시조를 해보니 수양하는데 굉장한 도움을 받았다. 모두 수양에 매진하며 쓴 시조들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도 공유한다면 교화에 상당한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만 77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등단 제안을 수락하게 된 속깊은 뜻을 살며시 내비쳤다. 그의 작품은 <시조생활> 2019 가을호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그는 9월17일 열반한 함타원 송영지 원정사(咸陀圓 宋靈智 圓正師)에 대한 애틋함과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예전 총부 구내에서 살았을 때 함타원님은 나를 각별히 예뻐해주셨다”며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나를 업고 다니셨다”고 일제강점기 시절 총부에서 자랐던 시절을 회상했다.

함타원 원정사는 원기42년 마산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김해·마산·신촌·수원·대신교당을 거쳐 전주교구와 미주서부교구, 중앙교구 교구장으로 봉직하다가 원기86년 정년퇴임했다. 함타원 원정사는 절도 있고 정갈한 품성과 대종사와 교법에 대한 특별한 신성으로 교화활성화와 내실을 기하는데 혈심혈성으로 노력했다. 항상 기도생활 속에서 보은봉공 했으며, 인재양성에 대한 특별한 서원으로 교화대불공을 이끌었다.

그는 “함타원께서 LA교당에 계실 때 교도로 있었던 분을 어느날 우연히 만났는데, 함타원원정사께서 우리 가족과 집안을 위해 몇십년간 기도를 하셨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집안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오랫동안 하시고 얼마전에 끝내셨다는 이야기에 늘 감사하고 황송했다”고 특별한 인연이었음을 회고했다.

개인적인 사랑과 교단을 위해 헌신했던 함타원 원정사를 위해 그는 종재식인 11월1일 추모시를 올렸다.

‘어릴 적 포대기에 업어주신 이야기며/ 평생을 가족같이 끈끈하신 사랑이며/ 열반의 향연 앞에서/ 쌓인 은혜 버겁네/ 당신의 기도 속에 중생은 철이 들고/ 따뜻한 천안 천수 세상 덥혀 주시니/ 천지간 이보다 큰일 또 무엇이 있으랴’

[2019년 1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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