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 아티스트 좋아은경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버려지는 철사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철사 아티스트.” 좋아은경,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은덕문화원 가을문화행사(10.04~ 10.10)에서 ‘버려진 철사를 구부려 새와 나무에 영혼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이 ‘업사이클링 철사아트 전’을 통해 소개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은덕에서 그의 작품 속 새도, 나무도, 산양도 온전한 존재 그대로 공간과 하나가 됐다. 은덕, 그 공간에서 좋아은경을 다시 만났다.  

2019 균형달력, 나무를 심은 사람
빵 봉지를 묶는 철사, 철 지난 달력의 스프링, 인쇄소에서 버려지는 파지, 목공소에서 잘려나간 자투리 나무, 심지어 길에 떨어져 밟혀나가던 나뭇잎마저 좋아은경의 손길이 닿으면 생명을 얻는다. 스스로의 일상과 이웃의 생활에서 쓰고 남거나 버려진 물건을 작품의 재료로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좋아은경. 그의 2019년 달력의 작품은 <엘제아르 부피에>. 엘제아르 부피에는 장 지오노가 쓴 단편소설의 주인공이다. 

은덕문화원 전시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좋아은경은 세상의 변화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묵묵히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룬 한 사람의 의지, 그 위대함을 균형달력에 담아냈다. 

“이런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어떤 종이를 써야 할지 굉장히 고심했어요. 하얀색 달력은 제 엽서를 인쇄할 때 색감을 맞추는 과정에서 나온 파지를 사용했어요. 갈색 달력은 인쇄 후 남은 여분의 종이를 활용했죠. 다른 곳에 쓰기엔 수량이 적어 인쇄소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역시 얹어왔어요.”

하단의 열두 달 부분은 대나무, 해초 등 비목재 펄프, FSC 인증 종이와 이면지에 출력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찍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레터프레스로 결정, 그가 직접 프린트했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만큼 달력 모두에 일련번호를 넣었다. 열무, 시금치를 묶는 철사를 모아 만든 작품 <who are we>, 자세히 보면 철사 끝에 사람들이 있고 모두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24시간 로그인 상태로 언제든 커넥팅, 네트워킹, 커뮤니케이팅 할 수 있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 기다란 안테나가 된 것은 아닌가요” 좋아은경이 우리들 각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좋아은경의 또 다른 작품에서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산양을 만날 수 있다. “한때는 개체 수가 매우 많았는데 천적을 피해 깊고 험준한 산악지대에 살기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신비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죠. 지금은 약 500여 마리 남아있다고 해요. 지역별로 개체 수가 100마리는 되어야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곳이 설악산뿐이라고 합니다.”
산양이 사는 나라. 그곳에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좋아은경은 ‘치명적인 위험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서있는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묻고 있다.  

산양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goats are)
좋아은경_작품 메인_침묵의 봄(Silent Spring)

달력철사로 만든 새, 침묵의 봄
좋아은경의 첫 작품은 <침묵의 봄>이다. 달력의 용수철 철사를 풀어내 만들어 올린 새가 앉아있다. 

“가끔씩 수첩 한구석에 그려온 작은 썸네일 스케치를 옮기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듣고 철사 작업을 구상하던 어느 날, 달력 위의 동그랗게 감긴 부분이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새의 다리로 연상됐어요.” 좋아은경은 달력의 철사 한 부분만 남겨놓고 풀어내 새를 만들었고, 하나둘 늘어난 달력 위의 새들에게 ‘침묵의 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제목은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 Silent Spring>에서 따왔다. 국민대학교 윤호섭 교수의 녹색여름 전에 선보여진 작품이다. 좋아은경은 이 작품을 계기로 2013년 <레이첼 카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매일 쏟아지는 ‘나쁜’ 뉴스를 접하며 레이첼 카슨의 오래된 경고가 떠오르는 것은 그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 바로 ‘환경과 생물의 관계라는 개념’ 때문일 것”이라고 좋아은경은 말한다. 달력의 스프링 용수철에서 시작된 첫 작업 <침묵의 봄>에서, <레이첼 카슨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시를 이어나가며, 좋아은경은 카슨의 메시지가 더욱 생생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품과 워크숍을 통해 균형과 공존의 메시지, 레이첼 카슨의 유산을 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일을 위한 매일
인류가 당면한 ‘실존적 위협’인 기후위기를 예술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으로 기획된 <내일을 위한 매일>, 좋아은경이 주최한 세계평화의 날 기념 기획전시다. 10월27일까지 성남 판교환경생태학습원에서 진행됐던 전시는 그의 스승인 윤호섭 교수를 비롯, 이지영, 주양섭, 브라이언캐시가 함께 했다. 전시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는 ‘우리는 기후변화를 느끼는 첫 세대이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로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함을,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에 함께 사는 우리의 소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불어로 ‘행복’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좋아’를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인 작가. 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마치지 않았고, 정식으로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작가. 생활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는 작가, 좋아은경이 우리에게 정중하게 말을 걸어온다. “왜 한쪽이 내려가 있고 또 다른 한쪽이 올라가 있을까요. 작품을 보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Look deep into nature_out
균형 시리즈 1
균형 시리즈 2-엘제아르 부피에
열무, 시금치를 묶는 철사를 모아 만든 작품 <who are we>, 자세히 보면 철사 끝에 사람들이 있고 모두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 스스로 기다란 안테나가 된 것은 아닌가요” 좋아은경이 우리들 각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2019년 11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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