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윤 교무

[원불교신문=최정윤 교무] 살면서 누군가와의 첫 만남은 설레임과 동시에 어색함을 함께 느게 한다. 하지만 반갑게 건네는 인사말 한마디가 더 편안하고 기분 좋은 관계로 더 깊은 인연으로 이어준다. 일전에 스님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스님! 어디에서 근무하시나요?”하자 “저는 이곳에서 수행합니다”라고 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다 수행 아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늘상 주문처럼 외우는 화두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잘 수행하는 사람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잘’이라는 단어이다. 이 ‘잘’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 등 ‘잘’이라는 글자 하나에 함축적인 의미가 참 많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가 다른 그 어떤 활동보다도 즐거운 활동이므로 관조하는 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라고 한다. 관조는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이 사라지는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를 말한다. 그는 이 관조가 ‘인간의 최선’이라고 하면서 가장 지속적인 활동이라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예로부터 큰 도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선을 닦지 아니한 일이 없다고 하면서 이 선(禪)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천만 경계 중에서 동하지 않는 행을 닦는 대법이 응하여도 주한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며, 이 법을 알면 언제 어디서나 선을 할 수 있다는 혁신적 선법인 무시선법을 천명 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가 선을 할 수 있도록 강조했다.

그러므로 모든 공부인에게 간곡히 당부하기를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고 한다. 그리하여 매 순간 자성을 떠나지 않고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육근(六根) 무사(無事)시에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고, 육근 유사시에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 했다.

정산종사는 대종사가 고경 한 귀를 인용해 혜복 이루는 요도를 간명히 밝혀 준 예시를 들어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공부요, 응용에 무념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이며, ‘상(相)에 주착한 공덕은 오히려 죄해의 근원이 되기 쉽다’고 한다.

이는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다 자식을 기르되 부모에게는 상이 없으므로 큰 은혜가 되듯 복을 짓되 항상 상이 없어야 큰 공덕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 없는 가운데 늘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생활하는 보은자가 되기위해 매순간 불리자성하고 응용무념하는 공부인이 되어야 하겠다. 

/원광보건대학

[2019년 11월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