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금강경〉을 보고 석가모니불을 성인 중 성인이라 찬탄하고 연원(淵源)으로 정했으며, 장차 회상을 열 때도 불법(佛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겠다고 내정한다. (<대종경> 서품 2장) 또한, 구인단원 기도해제 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서 미래의 불법에 대해 선포하며 미래의 불법은 재래의 제도화된 불법이 아니라고 밝힌다.(<대종경> 서품 15장) 그리고 ‘교법의 총설’에서 불교는 무상대도(無上大道)라고 존중하는 한편 과거의 불교는 출세간 승려를 본위한 조직으로 혁신의 대상이라 평한다. 이는 ‘제도화된 불교보다는 무상대도의 불법을 배우자’는 소태산의 의지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불교에 대한 이 모든 논의에 있어 그 핵심은 불법으로 ‘주체’를 삼겠다는 것이다. 주체 삼겠다는 것은 그것을 전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그 존재 안으로 동질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서 그것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불법을 새 회상 건설의 중요하고 요긴한 자산으로 삼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연원도 소태산 자신이 연원으로 정한 것이다.

석가모니에게 연원을 댄 것은 위에서 아래로 수기(授記)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거 성자들을 평가하여 선택한 존중의 태도이다. 이같이 불법으로 주체로 삼고 석가모니에게 연원한 것은 연못(淵)과 샘물(源)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연원한 것은 일원대도(一圓大道)의 연못을 파서 모든 교법의 물줄기에 도랑(물길)을 연결하여 당신의 대각에 따라 물을 끌어오겠다는 의도요 의지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불법의 물줄기를 더욱 중요하고 긴요하게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연원을 대는 것은 연못의 시원인 샘(源)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연못(淵)의 입장에서 그 시원을 존숭하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소태산의 교법은 불교를 무상대도로 존중하면서 불교의 교지(敎旨)를 활용하자는 것이지 불법에 동화되자는 것은 아니다. 불법은 일원대도의 중요한 핵심요소로서 필요조건이지 그 자체로 필요충분조건일 순 없는 것이다. 

일원상에 근원한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는 불법을 주체 삼아 모든 교법의 마땅한 바도 응용하는 소태산의 고유한 교법이다. (<원불교교사>) 즉 소태산의 교법은 불법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성격은 있어도 불법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소태산의 대각인 일원대도로 불법을 활용하는 것이지 불법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이 규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체 삼은 불법은 소태산의 대각인 일원상의 안목으로 수용한 불법이요, 일원상의 대각인 대원정각(大圓正覺)으로 해석한 불법이다. 그러기에 미래의 불법은 일원상의 발현인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로 해석하여 수용한 불법이요, 일원상에 근원한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로 견인하여 활용하는 불법이다.

/나주교당

[2019년 11월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