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모든 기관, 학교, 기업, 협동농장에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내용의 구호가 걸려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건너편 사진. 

[원불교신문=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북한은 지난해 11월 <라선경제무역지대 살림집 판매 및 리용규정>을 마련해 나선경제특구 지역에서 주택의 판매와 교환을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나선경제특구에서 국가소유 주택을 거주중인 주민에게 유상으로 판매하는 ‘주택사유화’ 정책이 실시됐다.  노동자 주택의 경우 평방미터(㎡)당 0.7달러에 판매해 ‘구매권증’(주택권리 증명서)을 발급했다. 이와 함께 신규 건설 주택, 재건축 주택의 일부를 주민들에게 판매(분양)하고, 경제력을 갖춘 층들이 합법적으로 주택을 ‘교환’해 실제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합법화했다. 

2001년 11월 3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앞으로 식량과 소비상품문제가 풀리면 근로자들이 자기 수입으로 식량도 제값으로 사먹고, 살림집도 사서 쓰거나 온전한 사용료를 물고 쓰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주택판매 구상을 밝힌 지 17년 만이다. 비록 나선경제특구에 시범적으로 시행됐지만 북한사회에 불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다. 


북한사회와 주민의 사고방식 변화
국제사회의 관심이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쏠려 있는 사이에 북한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우선 정책적 방향을 보여주는 구호가 바뀌었다. 북한은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경제건설을 표방하며 ‘세계적 추세’와 ‘실리 추구’를 강조하고 있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로 바뀐 지 오래다.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는 단순히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인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모든 분야의 변화를 이끄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 

둘째로 과거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의 역할이 커졌다. 2003년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합법화된 뒤 현재 북한 전역에는 500개 정도의 ‘종합시장’이 들어섰다. 기능적으로도 소매시장, 도매시장, 금융시장, 노동시장, 부동산시장 등 분야별로 시장이 형성됐고, 최근에는 온라인시장(‘전자상업 봉사체계’)도 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2009년에 문을 연 ‘광복지구상업중심’을 시작으로 대형 슈퍼마켓과 체인점 등이 들어서면서 유통망이 다양화되고 있다. 

셋째로 기업과 협동농장의 자율성이 확대됐다. 북한은 중앙의 계획 지표를 축소하고 자율 지표를 확대해 경제주체의 독자성을 강화했다. 북한에서는 새로운 경제관리방식을 ‘사회주의 기업관리책임제’라고 명명했다. 경제주체들이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기업관리책임제가 도입되면서 북한에서도 ‘경영전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각 공장·기업소별로 임금 및 소득 격차를 인정하고, 실질적으로 독립채산제를 강화하다보니 기업의 경영전략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것은 계획경제의 전통적 방식과 달리 기업의 경영전략을 중시하는 ‘경영학적 방식의 도입’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북한은 과거의 평균적인 분배정책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한 것만큼, 번 것만큼 분배”한다는 분배원칙에 따라 계획목표를 초과 달성해 더 많은 수익을 거둔 기업소와 협동농장들은 그에 상응한 분배를 받기 시작했다. 또한 2013년 해외 투자유치와 기업들의 수익증대를 위해 경제특구(경제개발구) 설치를 전국적으로 허가했다. 

넷째로 개인 컴퓨터와 휴대전화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은 “오늘날 정보과학의 시대, 21세기에는 콤퓨터를 모르는 사람이 콤맹이라 불리며 문맹자로 취급당하고 있다”며 개인 컴퓨터 보급에 나섰고, 주요 도시와 각 공장, 협동농장에 전자도서관을 설치했다. 북한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채팅을 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특히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500만 명(전체 인구의 25%)을 넘어섰다. 북한은 중국처럼 낙후된 유선전화 보급보다는 ‘3세대 이동통신(3G)’으로 바로 넘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지능형 손전화’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사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전화 보급대수가 100만대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통신혁명’이라고 할만하다. 이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화상통화를 하고, 휴대전화로 신문을 읽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문화의 확산은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의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사회 전반의 개방 흐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개혁과 개방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
1990년대 중반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고난의 행군’시절 북한은 계획경제이면서도 다음해 재정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북경제제재 속에서도 시장활동을 통해 먹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경제개발과 대외개방의 길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환율과 물가도 몇 년째 안정되어 있다. 아직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1970년대 말~1980년대 초)와 비교하면 변화 속도가 느리다. 다만 중국의 개혁개방이 봇물 터지듯 일시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지역이 점차 확대된 것처럼 북한도 이러한 방식을 밟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선경제특구에 시범적으로 도입된 주택사유화정책도 궁극적으로는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세계적 추세’ 수용을 내세운 당국의 정책적 변화가 맞물려 이뤄지고 있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해외 파견, 교류, 유학 등을 통해 해외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북한의 생활문화와 사고방식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2012년 첫 공개연설은 북한이 향후 경제건설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과 대외개방이 불가피하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북한의 3~4세대들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혹독한 경제난을 경험한 만큼 경제 재건에 대한 열망 또한 크다. 

남북 간 실질적인 종교 교류는 북한의 종교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북한의 인권정책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과거 북한은 외부의 ‘개혁 개방’, ‘종교 자유’, ‘인권 개선’ 등의 요구에 대해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북한도 사회변화에 따라 ‘경제개혁과 개방’이란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2년 6월2일 <로동신문>은 이례적으로 ‘지금은 밖에서 밀려오는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요람 속에서 성장한 일꾼(간부)의 관료화·귀족화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과거 북한 내부의 어려움을 외부(주로 미국) 탓으로 돌리던 관성에서 벗어나 내부의 문제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셈이다. 이러한 북한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고,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더욱 촉진해야 실질적인 남북 종교교류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현재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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