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명 교무

[원불교신문=윤관명 교무] 교화(敎化)란 무엇인가? 한자로는 가르칠 ‘교(敎)’, 될 ‘화(化)’다. 즉 변화되도록 가르친다는 의미다.

원불교 대사전에 따르면 ‘원불교 교법으로 사람을 가르쳐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 범부가 변하여 성현이 되게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갖게 하며, 악한 사람이 변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 일, 또는 원불교 교법을 신앙하도록 이끄는 일’이라 한다. 그리고 교화의 책무를 맡은 원불교 성직자를 ‘교무’, ‘교역자’, ‘교화자’라 이름한다. ‘교화’는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일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바른 방향로를 알려주고, 인도하는 일이다.

안내자는 먼저 목적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목적지를 향하는 수많은 길 가운데 가장 쉽고, 안전하고, 빠른 길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한다. 교화의 목적과 역할을 ‘내비게이션’에 비교할 수 있겠다. 과거의 내비게이션은 길을 안내해 주기만 하면 만족했으나, 지금은 실시간 교통상황을 판단해서 가장 빠른 길을 예측하고, 운행 중에 휴게소나 주변 정보까지 알려주는 등 다양한 기능이 생겨났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본래 목적이 길 안내인 것은 변함이 없다.

원불교의 교화는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정전>개교의 동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밝힌 ‘일원상의 진리’는 진정한 삶의 길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거기에 신앙과 수행의 두 틀에 훈련법까지 준비했으니, 종교의 본질적 가치와 다양한 기능을 충분히 갖췄다 하겠다.

지난 104년간 원불교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바른 신앙과 수행의 종교로 인정받고 있으며 짧은 역사 속에서 괄목할 만한 교화성장을 했다. 이제는 세계화를 위한 바쁜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종교적 의례보다 진정한 영성을 구하고, 출가의 수행보다 일상의 명상을 원하고 있다. 이런 큰 움직임 속에 우리도 스스로 혁신하지 못한다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교도의 고령화, 청소년교화 침체, 출가자 감소, 교화 정체 현상은 이미 오래전 예고됐으나 우리는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시 ‘교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화’의 우선순위는 ‘교화성장’보다 ‘변화하는 삶’이다. 삶을 교법에 맞출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더는 교화가 외형적 성장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삶에서 멀어진 종교는 다양한 형식과 의례로 박제화되어 간다. ‘교화’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본래 목적한 바 종착지는 각자가 자신의 진정한 삶을 되찾는 일이다.

지금 교화가 어렵다면 새로운 교화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거울을 보자. 내 얼굴에 환한 미소와 여유가 가득한가? 아니면 바쁘고 지친 표정인가? 살펴볼 일이다. 행복의 길을 안내하는 이가 행복하지 않다면 누가 따를 것인가. 교화는 애써 채워야 하는 항아리가 아니라, 땅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샘솟는 옹달샘이어야 한다.

/동창원교당

[2019년 11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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