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구전심수(口傳心授)란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전심수의 정법 아래 사람사람이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도록 하기 위해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인 <정전>을 내놓으셨고 이를 훈련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공부인: 친정엄마가 오래전에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반복하세요. 그냥 들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들을 때마다 힘들어요. 돈 벌어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고 평생 고생하셨으니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하는데, 매번 몇 시간씩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짜증이 나요. 

▶지도인: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대범, 선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라고 하셨습니다(<정전> 무시선법). 마음을 공부하는 것은 마음의 자유를 얻는 거죠.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별성과 주착심일 수 있습니다. ○○공부인은 ‘엄마의 말을 짜증 내지 않고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좋은 의도지만 분별성과 주착심이 되어서,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마음을 공부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것 같아요. 

▷공부인: 스스로 괴롭히고 있다고요? 

▶지도인: 엄마 얘기에 짜증 내지 않고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분별성과 주착심) 때문에 자신을 나쁜 딸이라고 자학하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그 마음 작용도 정상이고, 다만 공부만 하면 됩니다. ‘○○의 심지는 원래 착한 딸이다, 나쁜 딸이다 분별이 없건마는 엄마의 하소연을 듣고 짜증 내는 경계를 따라 나쁜 딸이라는 분별이 있어졌구나’하고 말이죠. 

▷공부인: 어느 때는 착한 딸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나쁜 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착한 딸 역할만 하고 싶어요. 

▶지도인: 착한 딸이 따로 있고, 나쁜 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어느 때는 착한 딸의 모습으로, 어느 때는 나쁜 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죠. 엄마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마음과 엄마의 말에 짜증 나는 마음이 따로 있지 않아요. 어느 때는 잘 들어주는 마음으로, 어느 때는 귀찮아하는 마음으로 나타나는 거죠. 에너지는 하나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이 녹아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잔인한 마음이 녹아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인색하고 탐내는 마음이 녹아서 혜시하는 마음으로 변하며, 사상(四相)의 차별심이 녹아서 원만한 마음으로 변”한다고 하셨습니다(<대종경> 불지품 2장).

우리의 몫은 그저 ‘그때 그 마음’으로 공부하는 거죠. ‘○○의 심지는 원래 짜증 난다, 나지 않는다는 분별이 없건마는 엄마가 푸념하는 경계를 따라 짜증 난다는 분별이 있어지는구나’하고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공부하면 엄마의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 거죠. 그러면 엄마가 원래 푸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따라 푸념을 하시는, 엄마의 전체와 부분과 변화가 보이기 때문에 “또 푸념하냐”면서 같이 웃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어머니 얘기를 잘 들어드려야 한다고 다짐하기보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 있어지는 자신의 마음 작용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화훈련부

[2019년 11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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