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준 교무

[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이번 수능 날도 어김없이 추웠다. 수험생들의 한이 서려서 춥다는 우스갯소리도 어느 정도 인과관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수험생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실제로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나의 수능 날, 그날도 역시 추웠다. 생소한 학교, 생소한 교실에서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치는 긴장이 무엇인지 느끼게 됐다. 처음 오전 시험을 칠 때까지는 괜찮았다. 컨디션도 좋았고 예상했던 부분에서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오후 영어시험을 치다가 그만 졸고 말았다. 한참을 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시험시간이 절반 이상 지난 상태였다. 그 뒤로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집에서 매겨본 성적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고 왜 수능 이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얼핏 알 것만 같았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생님들도 마주하지 못했고 시험성적을 나누는 친구들 사이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도 나오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친구들을 시험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학교 문화에 젖어 친구들의 모습 속에 그들의 성적을 겹쳐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시험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내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다. 나를 비추는 모습 속에도 자연스럽게 성적표가 겹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고 어떤 색안경도 끼고 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성적이라는 상에 가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큰 각성을 얻게 됐다. 성적을 강조하던 학교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마치 그것이 당연한 시선인 것처럼 내 안에 박혀있었다. 성적표는 그 사람이 몇 점짜리 인간이냐는 증명서가 아니라, 그저 방금 몇 킬로미터를 지나왔다는 이정표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됐다.

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이 가장 처져 있는 때를 꼽으라면 성적표가 나온 날을 꼽는다. 자신의 성적을 남과 비교하며 좌절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종종 내 이야기를 한다. 내 수능 점수를 가감 없이 이야기하며 절반도 못 맞았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몰입하며 재수는 왜 안 했느냐, 원불교학과는 왜 갔느냐 질문을 퍼붓는다. 그럴 때 나도 아이들에게 역으로 묻곤 한다. 

너희들이 보기에 내가 반 점짜리 인간으로 보이느냐고. 고맙게도 아니라며 우렁차게 대답해주는 아이들에게 상(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의 가치를 숫자로 매길 수 없듯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히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선입관을 내려놔야 참다운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11월22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