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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의 삶] ‘필라델피아 원불교 어머니’
[호법의 삶] ‘필라델피아 원불교 어머니’
  • 안세명
  • 승인 2019.12.03
  • 호수 19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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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타원 김복혜 대호법

[원불교신문=안세명] “대종사께서 교리도를 내주셨으니 나는 기원문 결어로 대종사께 영생을 보은 하겠다.” 담타원 김복혜(潭陀圓 金福慧·78) 대호법은 부친이신 대산종사의 서원이 그의 일생이 되어 살아있는 미주교화의 이정표가 됐다. 그는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이하 미주선대) 설립의 실질적 기초와 미주동부교구 교당과 교무들의 법적 자문, 미주선대 예비교무들의 건강과 복지·법률 관련 업무를 자상히 살피고 챙기는 ‘자비보살’의 생을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필라델피아 원불교 어머니’라 부른다.
 

너희들이 미국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49년 전이다. 그의 나이 31세인 원기56년(1971), 대산종사의 미국 교화 부촉으로 부군인 심산 고원규 교무와 도미하여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자리를 잡았다. 상산 박장식 종사는 이들 부부가 10년간 피츠버그에 머물 때 뉴욕교당에서 그 먼 길을 한 걸음에 달려와 “너희들이 미국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교단 일 안하고 이렇게 살려고 왔느냐”고 크게 꾸짖었다. 이 말씀에 그들은 미주 땅에 건너온 소명을 자각하고 성자의 뜻을 살려내기로 서원했다.

필라델피아로의 정착은 동생인 김복인 교무(미주선대 총장)가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템플대학교에서 불교학 박사 공부를 하게 되어 함께 살게 됐고, 이후 필라델피아 교도회장, 미주선대 이사와 원광복지관 관장직을 수행하며 대종사가 염원한 교화·교육·자선 모든 분야에서 보은의 기회를 갖게 됐다.

“대산종사께서는 원기77년(1992) 미주선대 설립을 직접 하명했고, 이를 받들기 위해 삼천일 기도를 올렸다. 신기하게도 천일마다 어려운 고비가 하나씩 해결됐고,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미주선대 허가가 났을 때 진리의 위력을 크게 느꼈다. 그 뒤로는 모든 일에 앞서 기도를 결제했다.” 그는 매순간 고난이 닥칠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 마음공부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이 광활한 미국 땅에 천여래 만보살을 발아시키는 인재양성의 교육성지가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에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무수히 감사를 올렸다.
 

정전사경과 교전공부로 하루 열어
그의 일상은 아침좌선과 기도, 당뇨로 눈이 안 보이는 14살 노령견 ‘타고’와 산책을 한다. 매일 빠지지 않는 교전공부와 정전사경은 그의 가장 소중한 일과다.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를 여러번 사경하고 <대산종사법어>를 2번째 쓰고 있다. 

대산종사께서 어렸을 적부터 “너는 <채근담>을 한번 읽어봐라” 하셨는데 한 번도 받들지 못해 2년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3번째 읽는 <채근담>에는 교전과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도리가 자상히 밝혀져 있다. 그러나 대종사의 교법은 성품의 내역과 불생불멸의 진리, 인과보응의 이치가 더 근원적으로 밝혀져 있어 교전으로 <채근담>을 다시 바라본다. 최근 미주선대 옆집으로 이사한 그는 매주 수요일 선학대 교무들과 교리공부를 한다. “이렇게 보은할 수 있어 감사하다.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일원의 진리에 바탕해 정성을 다해 살겠다.” 교리공부는 그에게 있어 일원상 진리 전에 서원하는 시간이다. 

2007년 시작해 13년째 이어지고 있는 수요공부는 아침 8시15분에서 9시15분까지 진행되며, 최근에는 <대산종사법어>를 공부하고 있다. 개인별로 20분간 주제발표 후 각자의 공부담을 회화하며 묵었던 정신을 도반과 함께 일깨우는 엄중한 시간이다.

 
나의 스승님
그의 법명은 복혜(福慧)다. 대종사께서 지어 주신 법명이다. 그가 두 살 때 대종사는 열반했다. 대종사는 어머니 의타원 이영훈 종사에게 “네 배 속에는 딸만 들었냐”하니 어머니는 “아버지께서는 남녀평등을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하며 두 분이 크게 웃으셨다고 한다. 

정산종사는 얼굴이 참으로 평화로왔 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졌다. 말씀도 인자하고 부드러웠으며 자비로운 눈빛은 다 품어 안았다. 정산종사는 총부 구내에 사는 아이들을 참 이뻐했다. 시자에게 “야야 다 들어오라고 해라” 하며 사탕을 주는데 공부를 잘하면 사탕 2개를 줬다. 그는 더 달라는 말을 차마 못했다.

그는 원기77년부터 6년간 여름이면 한달간 대산종사를 찾았다.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에 평생 대산종사를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다. 오직 마음의 스승이었다. 눈도 직접 마주치지 못했고 말씀도 거의 없으시니 참 어려웠다. 사가에 온 기억도 딱 두 번이다.

“기원문 결어를 읽어 보거라.” 대산종사는 아침에 들어가면 기원문 결어를 읽게 했다. 20~40번 계속 읽게 했다. “그만 할까요”라고 하면 그대로 가만히 계셨다. 그럼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런 후 입정하고 기도하셨다. 대산종사는 끊임없이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부르고 염원했다. 완도훈련원 조그마한 초당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정산종사께서는 9년을 누워계셨다. 나는 이렇게 비도 맞고,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참 행복하다.” 대산종사는 그렇게 늘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마음에 모시고 살았다. 이러한 심법이 너무나 존경스러워 그의 말 처음엔 언제나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이다.
 

공부와 사업의 힘은 어디에서
“대종사·정산종사·대산종사께 맥을 대고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해 삼학수행하고 사은보은하고 사요실천하는 것이 나의 공부표준이다.” 수십 년을 암송한 대산종사의 기원문 결어를 외우듯 그의 공부길은 막힘이 없다. 그는 ‘정신이 맑아지면 다시 떠오를 것이니 그때 맑은 영지로 하고 다른 책은 보지 마라’ 하셨으므로 ‘그 후로는 일절 책을 보지 않았느니라’는 <대산종사법어> 신심편 21장을 인용하며, “마음을 비우고 오롯하고 청정한 일념으로 살면 내가 알고 싶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법문이 떠오른다. 그럴 때 감사하고 희열에 찬다”고 말한다.
 

교단 2세기, 희망찬 미주교화를 위해 
“미국교화 걱정하지 않는다. 대종사·정산종사·대산종사께서 밝혀주신 일원대도 교법이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 교화에 대해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100년 조금 넘은 교세를 가지고 함부로 교화를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한다. 삼학수행과 사은보은, 사요실천이 미국은 물론 인류를 건지는 법이라 그는 확신한다. 최근 미주자치교헌 제정을 앞두고 그는 미국 사회법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있다. 정관 작업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미주총부법인인 원다르마센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자치교헌 안에 총부 기능이 제대로 담겨져야 하기에 모든 행정과 운영상의 여건들이 온전히 관리되고 점검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는 <원불교 교헌>을 모법으로 미주총부법인 정관에 종교단체로서의 역할과 기능, 구조를 넣을 수 있도록 학습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또한 교역자들에게 “법이 아닌 것을 해서는 안 되며, 쉽게 하려고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주문한다. ‘불의인 것은 죽어도 하지 말자’는 그의 신념이 일생을 두렷하고 가지런하게 한다. 이러한 소신이 있었기에 미주선대와 기숙사, 복지관을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게 했다. 그의 복지관 사무실에는 법률 관련한 서류들이 빼곡히 축적돼 있다. 언제든 보여줘도 한치의 틀림없는 원칙 행정이 오늘의 미주선대를 있게 했다.


내생 서원
“나는 다음 생에 전무출신 하겠다고 대산종사께 약속했다.” 원기71년, 내생에는 남자로 태어나서 교무의 길을 걷겠다고 기도 올리는 그에게 정산종사가 하얀 법복을 입고 꿈에 나타나 “복혜야. 너 여기 앉아봐라. 네가 내생에 전무출신 하려면 남녀를 떠나서 오롯이 출가하겠다는 일념으로 서원을 올려라”고 명했다. 전무출신은 그의 인생여정의 귀일처요 새로운 희망을 주는 샘터이다.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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