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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대종사님 법, 일상이고 삶이지요”
[신앙인] “대종사님 법, 일상이고 삶이지요”
  • 이은전 기자
  • 승인 2019.12.03
  • 호수 19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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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섭 남울산교당 교도

처처불상 사사불공 새기며
일원가족 일궈
8년 동안 교도회장 맡아
교도들과 교당신축 난관 헤쳐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원불교적 삶의 태도를 적실하게 표현한 교리표어인 ‘처처불상 사사불공’에 꽂히면서 삶의 방향이 달라진 교도를 만났다. 화산 조대섭(75·和山 趙大燮·남울산교당) 교도. 그는 41년 전 이 말씀에서 출발해 현재도 이 말씀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 

“32세 때 직장 동료를 따라 동네 한약방 구석진 방에 처음 갔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작은 방에 풍금 하나 달랑 있고 1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무슨 공부를 하는데 사이비 종교같더라구요.”

30대 초반, 아들 셋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이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종교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었다. 천주교 신부인 막내 동생을 포함해 형제들이 모두 성당에 다녔지만 그는 왠지 발길이 가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면서 따라갔던 원불교 공부방에서 받은 작은 독경 책자를 읽어보고 사이비 이미지는 벗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소에서 벗어나 어엿한 충주교당이 돼 교무가 처음으로 부임했고 그 교무에게서 처처불상과 사사불공에 대한 법문을 들으면서 ‘종교’가 확 다가왔다. 그길로 아내, 아들 셋과 함께 다섯 명의 가족이 동시에 입교해 일원가족이 됐고 이후 그 중 첫째 아들(조원행 교무·밀양교당)이 출가해 전무출신이 됐다. 

“곳곳이 부처님이니 일마다 불공하라는 말씀이 핵심이 아니겠어요? 여기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젊어 처음 만난 원불교에서 일체 만유를 다 부처의 화현으로 대하라는 일원의 진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이 세상이 모두 부처라는 말씀에는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들 결혼 후에는 <대종경> 교의품 15장, 대종사님의 실지불공하라는 말씀을 며느리에게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 박상경 교도의 말이다. 

“원행 교무 정토가 오랫 동안 한 집에서 우리들과 같이 살며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남편도 옆에 없는데 시부모와 같이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화산님이 특히 며느리를 많이 챙기셨어요.”

그는 ‘원불교는 삶에 그대로 녹아있는 생활 종교’라고 정의한다. 요즘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실천을 담아놓은 일상수행의 요법에 마음이 닿아있다. “9개 조항이 모두 내가 하는 그대로입니다. 멈출 때 멈추고 감사할 때 감사하고. 이대로만 하면 다 부처됩니다. 젊었을 때는 정말 어렵더니 지금은 미안하다, 고맙다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평생을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것이었다. 성격이 급해 젊었을 때는 주변 인연과 갈등도 많았고 충주에서 다니던 한국 비료공장이 문을 닫아 난데없이 일말의 연고도 없는 울산에 정착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40년 동안 나고 자란 충청도를 떠나 갑자기 내려 온 경상도는 너무 낯설었다. 같은 계열사인 한국알콜산업주식회사에 발령받으면서 언제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일단 교당부터 수소문해 울산교당을 떠나 첫 둥지를 튼 남울산교당을 찾았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낯선 타향살이의 경계를 교무님 법문과 문답감정으로 이겨냈다. 

“교당만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멈춰라’ 교무님이 늘 해주시던 말씀 따라했습니다. 그렇게 멈추고 또 멈추니 나를 괴롭히던 사람에게도 감사가 나오더군요.”

같이 내려왔던 동료는 견디지 못하고 퇴사해 충주로 돌아갔듯이 그도 교당이 아니었다면 울산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원불교와 교당은 일상이고 삶이다. 이 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아찔하다. “나와 비슷했던 친구들이 이혼했거나 자녀 교육 실패 등 가정 파탄이 많은 걸 보면서 이 법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종사님 법이 일상을 지켜줬어요.”

8년 동안 교도회장을 맡아 교당 신축 관련 큰 난관을 헤쳐나올 때도 이 법에 대한 믿음이 중심이 됐다. 부채가 커 교당 신축이 어렵다는 소문에도 추호도 흔들림 없이 교도들과 힘을 합쳐 이겨냈다. 교당 봉불은 해놓고 남은 빚을 청산하는데 시간은 급하고 돈도 없었다. 

“신심 깊은 교도님들이라 합력이 잘됐어요. 대출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일이 잘못되리라는 걱정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당이 무너질 리는 없지요. 대종사님 사업인데 잘못될 리가 있나요?”

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원불교. 그를 우연히 이 법으로 이끌어 준 인연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직 공부가 멀었어요. 40이 넘으면 죽어갈 보따리 챙겨야 한다고 하셨는데 내생은 모르겠고 현생을 잘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현생을 잘 살면 내생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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